월요일 아침이다. 두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사위도 출근하고 나니 집안은 고요하다.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마무리 하는 생활 패턴은 집에서와 같다. 우리가 관광을 즐기는 편이라면 좁은 도시 홍콩이라 해도 갈 곳이 없겠는가. 우리는 이 도시가 초행이 아닌지라 前에 한번쯤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이다 보니 또다시 돌아보고 싶은 곳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마음속으로 이곳저곳을 가늠하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옹핑(〇坪) 빌리지 빅부타 상에 올라갈까, 아니면 수상가옥과 옛 홍콩 어촌 풍물이 남아있는 바닷가 따이오(大澳)마을에 갈까 아직은 결정을 못하고 있는데 딸의 전화기가 울린다. 좀 사연이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더니 둘째 녀석 雅引이가 몸에 열이 나서 학교 양호실에 누워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데리러 가지 않을 수 없어 근심된 마음으로 동행한다. 지하철을 타고 올림픽 역에서 하차. 다시 택시를 갈아타고 까우롱 (九龍 Kowloon junior school) 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학교 건물과 다름없어 보이는 건물에 5층 이하의 높지 않은 벽돌집과 넓은 운동장이 수업시간답게 조용하다. 교문 밖에서 전화를 하니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손목을 잡고 직접 교문 밖으로 나온다. 녀석은 학교까지 찾아온 엄마와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까지 만나니 집에서와 달리 좀 쑥스러운가보다.
이마에 손을 대 보니 약간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수업시간에 교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밖에 나온 것으로 불편한 곳은 느껴지지 않는것 같다. 오히려 기대하지도 않았던 떡을 받아든 아이처럼 은근하게 달가워하는 표정을 짓는것 같아 안심이 된다.
어제 저녁밥을 먹고 불편해 하더니 먹은 것이 얹혔던 것 같다. 미열이 난다고 했지만 학교에서 취해야 할 마땅한 조치일 뿐 그리 심한 증세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녀석은 “몸에 이상이 있어 엄마가 학교로 데리러 오는 것이 한 가지 바람” 이라고 가끔 싱거운 말을 했다는데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고 속으로 흡족해 할는지도 모른다.
아이 적 에는 대개가 그런 불상사를 기대한다. 조회시간에 쓸어져 누군가의 등에 업혀 들어가서 양호실에 누워있는 것, 별안간 체온이 올라 누워 있다가 일찍 조퇴하는 것. 병원에 입원해서 친구들 병문안을 받는 상상 등.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어릴 적에도 내게는 그런 불상사가 한 번도 없었다. 건강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녀석은 2013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열 살 되었다. 성격이 밝고 친화력이 좋아 주변에 친구들이 많고 인기가 있어 마음을 주고받는데 익숙하다고 하니 기특한 일이다. 새로 사귄 친구와 가까워지면 집으로 초대해서 아이를 식구들에게 소개하고는 하룻밤쯤 재워 보내고 자신도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동네 빈터에서도 모르는 친구들과 함께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도 타며 스스럼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심성은 아이의 큰 장점이다. 길을 가다가도 목이 마르면 인근 음식점에라도 들어가서 "물좀 주세요."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부탁을 하면서도 얼음까지 띄워 달라고 한다니 그정도의 뱃심이라면 어떤 경우에라고 빈한하게 살지는 않을것 같다.
그런데 다소 엉뚱한 데가 있어 가끔 엄마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딸이 코로나에 걸린적이 있다. 자가 격리를 하는 중인데 녀석은 어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운데서 얼굴을 맞대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녀석은 멀쩡하고도 무사하게 건강을 지켜냈다. 친구 사이에도 악의 없는 장난 끼는 그 나이에 어울리는 학교생활이자 사회생활이며 삶의 기술이다. 좋은 친구들과 진한 우정 나누면서 국제적인 인물로 발전하게 될 것을 믿는다.
저녁나절에 아내와 함께 동네 푸뚱(富東) 시장에 가서 채소와 고기 등을 사왔다. 우리가 홍콩 말을 모르고 그들은 한국말을 전혀 모르고 서로가 영어도 시원치 않으니 만국 공통어로 사고팔고 큰 불편함은 없다.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세계는 점점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雅引이는 귀가 후 한잠 푹 자고나더니 또 나갔다. 방과 후 교육인 운동과 놀이 등을 하기 위해서인데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나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달란트대로 살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내외가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시간인데도 동네 한쪽에서 친구들과 공놀이에 정신이 없다. 축구공 차는 소리가 멀리까지 뻥뻥 크게 들린다. 끝.
2023. 3.13
2023. 3.13





'홍콩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우 생일날 (0) | 2023.05.10 |
---|---|
Discovery Bay 에서 Victoria Pick로 (0) | 2023.05.10 |
어째 김치를 모를까 (0) | 2023.05.10 |
홍콩 꽃시장 (0) | 2023.05.10 |
세계는 하나니까 (0) | 2023.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