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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일지

Discovery Bay 에서 Victoria Pick로

  새벽마다 부산을 떨면서 등교하던 손자들과 사위가 맞는 즐거운 휴일이다주말이라 좀 더 늦잠을 즐겨도 괜찮은 날인데도 아이들은 다른 날 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홍콩에 와서 첫 번째 맞는 주일아침, 한국의 본교회 사이트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예배를 드렸다. 교회출석이 여의치 못할 때의 차선책인데 참 편리하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곧 외출준비에 들어갔다. 사위는 우리가 여기 온 뒤에 성의있게 대접했거나 함께 외출 한번 못한 것을 미안해 했다모처럼 휴일을 맞아 온 식구가 2층 버스를 타고 DB (Discovery Bay) 로 나들이를 갔다

  세계 어느 곳이나 시장경제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면 경치 좋은 곳에는 고급 주택가가 들어섰고 또다른 전망좋은 곳엔  접객업소나 레스토랑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맛 집으로 이름난 곳은 SNS를 통해 세계인이 공유하고 있어 인파로 북적대는 바람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 많다. 이곳은 란타우섬 북동쪽의 작은 만 (灣). 홍콩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 이며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시설이 없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아 고급 주택가로 선망받는 곳이다. 바닷물이 발아래서 일렁이는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아 파스타 등 피자나 고급스러운 과자와 크림등 아이들 좋아할 만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후에는 잘 꾸며진 바닷가를 걷기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반원형 바다를 돌아 산 아래쪽으로 보이는 고급 주택을 바라보며 우리가 두고 온 남양주 비어있을 우리집도 생각한다. 마음은 구름이 되어 하늘로도 바다로도 날아가 본다.

   손자아이 두 녀석들은 먼저 집으로 보냈다. 이곳 바닷가는 큰손자 윤우가 다니는 D Bay 외국인 학교 근처이기도 하지만 가족끼리 종종 나들이 오는 곳이라 아이들끼리만 보내도 곧잘 찾아갈 것이다그만큼 이곳 생활이 자유로울 정도로 적응했다는 의미다.

   우리는 쾌속선을 타고 홍콩 도심지로 향해 약25분 만에 센트럴 부두에 내렸다홍콩에 대한 지리와 방향감각을 아직 익히지 못했지만 바다란 어느 곳이고 통하는 물길이 있어 인접한 도시는 서로가 오고 가기에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홍콩 Discovery Bay에서 中環(Central) 까지 뱃길로도 멀지 않다는 사실은 내가 알게 된 새로운 홍콩 지리 중 하나가 되었다.

   다시 Victoria Pick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고 산 정상근처 전망대로 향한다언제 보아도 쭉쭉 뻗어 미끈한 고층건물들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홍콩바다의 반짝이는 물결마치 인종 박물관과도 같은 많은 관광객들의 경이로운 찬사와 감탄의 함성을 듣는다커피를 마시며 반시간쯤 앉아 놀다가 더 볼 것이 없어 하산하는 차에 올랐다

  시내에서 다시 버스를 이용해 통총 (東通)역에 내린다자식 된 도리를 다 하려는 아이들의 효심을 달게 받는다즐겁고 흐뭇하지만 혹 우리로 인해서 마음속에 어떤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내가 가진 것 넉넉하지 않아 도움 줄 수 없는 처지가 부끄럽고 아쉽다이제 4박5일이 지났을 뿐이다좀 더 자유롭게 여유시간 즐기면서 아무 걱정 없이 소일하는 것이 딸과 사위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다.

  걷기에 약간 불편할 정도로 오금에 통증을 느낀다한국 날씨가 해동되고부터 운동 삼아 무리한 속보로 걸었고 게다가 똑바로 서서 뒤꿈치 들기 운동을 하루에 백번씩만 하면 여러 가지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좀 지나치게 3백번씩 했다. 얼른 좋아지고 싶은 욕심에 운동을 너무 과하게 한 탓일까. 좋아진 곳은 찾을 수 없고 오금 아픈 증세만 얻었으니 과도한 욕심으로 아니 한 것만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불편할 뿐 심하게 아프지는 않아 참을 만하니 감사한 일이다집에 들어와 편하게 쉬면서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한 김원일 작가의 마당 깊은 집 을 펼쳐 들었다. 그 밤 11시쯤 다 읽고 생각하니 이 정도의 구상력과 작품성이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작가는 그만큼 어려운 소설기법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살아낸 세대로서 공감 가는 이야기 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적 관심과 재능을 키우지 못한 지난날로 인해서 지금도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다.   .

                                   

                          홍콩에서 5일째 되는 날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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