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하나니까
편하게 자고 아침을 맞으니 몸도 마음도 안온하다. 오늘은 센트럴 지역으로 점심 식사하러 나가자며 딸아이가 준비를 서두른다. 11시에 출발. 2층 버스를 타고 너른 시야를 즐기며 시내로 향한다. 바다를 메워 조성한 도시답게 다각도로 보이는 바다가 이제는 평범한 경치로 눈에 익었다. 이곳 체류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초고층 아파트나 좌측 차선을 이용한 차량의 주행로, 멀리 가까이 보이는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이 눈에 익어 자연스럽다.
Central city에 내려 깔끔하고 편리하게 조성된 포장도로를 걷는다. 화려하게 크고 높은 건물끼리 연결된 통로를 지나 중심가 오르막길에 설치된 에스커레터를 타고 100여 미터쯤 올라간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을 내용으로 한 청춘들의 이야기인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에 등장하는 미드레벨 에스카레터(Mid levels)다. 이곳은 그만큼 명소로 알려져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내려서 약간 허름해 뵈는 식당 앞에 이르렀다. 낮 12시 반인데 스무 명도 넘을 것 같은 줄 맨 끝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반식 경 쯤 지나 입장을 하고 둥근 식탁에 여럿이 섞여 앉았는데 모르는 이들과 합석한 자리가 비좁아 젓가락질하기도 옹색하다. 분명 라면인데 도가니 고깃덩어리며 살코기 넉넉한 분량의 먹거리로 보아 30분쯤 기다려서라도 먹을 만한 음식이다.
또 기름진 홍콩음식을 만족하게 먹고 센트럴 지역 바닷가로 내려왔다. 우리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대형 원둘레의 놀이기구를 탔다. 현지 홍콩달러 20불인데 노인우대로 10달러씩을 지불하고 딸과 함께 둥글고 큰 수레바퀴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 센트럴 잘 조성된 찻길과 바다에 떠다니는 선박들이 마치 조감도 펼친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바다건너 신도시로 건너가 봤으면 했는데 딸애가 얼른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열 살 된 초등생 아인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씩을 마시고는 東通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시원 쾌적한 차내는 붐비지 않아 편히 앉아 땅속과 바다와 산과 섬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철길을 달려 집으로 간다.
아내와 나는 지하철역에 딸린 마트에 들렀다. 저녁 식사준비를 위한 먹거리를 장보기 위함인데 딸애는 먼저 집으로 들어갔고 우리 둘만 마트에서 이것저것 식료품을 눈여겨본다. 식빵도 사고 몇 가지 채소도 만지작거리며 싸고도 좋은 것을 고르는데 그것이 다 그것이며 남양주 우리 동네 마트와 별 다름없는 가짓수와 품질이다. 세계는 하나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두부와 채소 몇 가지를 카트에 넣고 계산대 벨트위에 얹었다. 우리를 보며 점원이 홍콩 말로 뭐라고 말 하는데 그녀의 표정을 보니 무언가 묻는 게 분명하다. 아내는 아니라며 마치 홍콩 현지인처럼 천연덕스럽게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NO 라고 대답하니 그녀 역시 알아듣고 카운트하기 시작한다. 입력하는 대로 모니터에 액면가가 표시된다. 도합 82 HD다.
다른 말 할 것도 없이 100달러짜리를 지불하니 거스름돈을 정확하게 내어 준다. 계산원은 우리에게 뭐라고 물었을까. 눈치만 있으면 홍콩 말이나 아랍어나 아프리카 어느 나라 말이라도 지구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라면 다 통한다. 계산대의 그녀는 우리에게 포인트 적립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것이고 아니라며 NO라고 머리를 가로 저으니까 그런 줄 알고 계산을 끝냈을 것이다. 사람들 살아가는 방법이나 추구하는 경제적 이념 등 생각되는 향방은 다 같다고 봐야한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도 바로 그 순간에 손님에게 묻는 질문은 포인트 적립 여부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세계는 하나로 다 통하게 되어있다.
밤에는 주변 바닷가 잘 포장된 광장 길을 걸어 적당한 운동을 끝으로 또 하루를 맺는다. 앞으로 남은 6일,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 두 녀석의 둥지 같은 삶의 터전, 이집에 언제 또다시 오게 될는지. 귀하고도 소중한 날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야지.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끝.
2023. 3. 16. 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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