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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일지

윤우 생일날

 

3월 11일. 토요일.

   어제저녁 산책 중 길을 잃어 만 오천 보 이상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쉬었다. 바다가 있고 인근에 공항이 있어 크고 작은 선박들이 물거품을 일으키고 비행기가 빗금을 그으며 힘차게 오르내리는 모양을 유심하게 쳐다본다.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간격으로 여객기가 종일 홍콩으로 들어오고 나간다. 이 도시는 그만큼 지정학적 으로 중요한 위치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거의 끝나고 해외여행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딸아이는 현지 한글학교 교사 업무로 출근했다가 1330분경 귀가한다. 그런데 보조교사라는 설익은 직분이 마뜩지 않아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발행하는 정식 교사자격증을 받기 위해서 본인이 노력하고 있다 하니 머지 않아 이루어질 줄로 안다.

   오늘은 첫째 손자 윤우의 생일이라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구입하는데 동행했다. 아내는 이곳 지리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혼자 다니기에는 무언가 불안해 내가 동행하게 된다. 이것저것 구입해서 함께 들고 오려니 팔이 뻐근할 정도다. 아내가 주관하는 우리 가정의 생일 필수 음식은 잡채와 미나리나물 그리고 호박전이다. 

  아내가 가족들의 생일마다 빠지지 않고 내놓는 음식의 의미는 이러하다. 잡채는  장수기원이 목적이고 미나리 무침은 청춘의 마음으로 항상 푸르게 살라는 의미, 또한 호박전은 동그란 모양처럼 금전적으로 넉넉한 삶을 살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니 근거가 있건 없건 나 역시 그렇게 믿어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케이크 절단과 함께 해피버스데이 노래도 하고 박수도 쳐 주었다. 우리는 손자녀석이 사춘기 증상에서 무난하게 벗어나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딸네 가족과는 친 형제처럼 지내는 친구이자 선배 격인 ㅎ ㄹ 언니 부부가 저녁 시간에 방문했다. 윤우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것이다. 아이들도 이모라고 부르며 꽤 가깝게 지낸다. 그들은 윤우에게 선물할 것을 고르기 힘들었던지 봉투에 축하금을 넣어 선물을 대신한다. 나 역시 홍콩달러로 500불을 넣어 윤우에게 줄 것인데 이들과 중복되는 관계로 그들이 돌아간 뒤에 윤우 손에 쥐어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준 액수와 내가 봉투에 넣어준 액수가 동일하다니 할아버지로써 좀 약소한 것 같아 마음이 졸망해진다.

   젊은 세대들과의 자유로운 시간을 주기 위해서 아내와 나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우리도 젊은 시절 어른이 곁에 계시면 우리를 찾아온 이웃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에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던가. 무정한 세월은 어느덧 우리를 젊은이들이 불편해할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방에 들어와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이 돌아간다는 인사를 할 때에야 다시 거실로 나왔다.

  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아침마다 가정예배 시간에 기도를 얹어왔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오래도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삭막할 수도 있는 객지 생활이 즐겁고 감사한 나날이 되게 해 달라는 간구가 꼭 이루어질 줄 믿는다.

  까다롭던 사춘기와 함께 윤우의 생일이 이렇게 지나간다. 최윤우. 만15, 2008 3월 11일생.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어디까지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르는 앞날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 더 소중한 생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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