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東通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홍콩역으로 가다가 중간쯤 되는 南昌 역에 내려 다른 철도로 갈아 타고 침사츄이 역에서 내렸다. 번화가를 걷고 돌아 목적지 식당으로 가는 길이 복잡한데다가 대낮의 햇볕이 은근하게 더위를 느끼게 한다. 찜통더위는 아니더라도 촉촉하게 땀이 날 정도로 걷는 시간은 12시 반쯤 되었다.
은근하게 시장기가 밀려오는데 아내는 "혈당이 떨어져요." 한다. 이런 경우 곁에 있는 내가 더 긴장되고 마음이 바빠진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 다리가 떨리고 진땀이 흐를 정도란다. 무리하게 좀 더 걷는다면 길 위에 쓸어 질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당분 섭취용 초코렛을 입에 넣었는데도 견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길옆 상점에 들어가 급하게 바게트 빵 한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급한 경우라도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 중에 빵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먹지는 않고 준비만 했는데 식당 까지 가는 길이 예상외로 멀거나 혹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이것이라도 입에 넣어 혈당을 보충해야 한다. 이런 증상은 오늘이 처음이 아닌 고로 진작 준비 했거나 위급한 경우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복잡한 길 걸으며 무릎 안쪽의 통증이나 괴로워하고 있었다.
겨우 도착한 음식점에서 잠시 기다린 것 까지 십오 분쯤 지났다. 맛이야 있건 없건 배불리 먹어야 할 이유가 있다. 아내는 치킨라이스라는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 말래시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그만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다 먹고 나서 하는 말, "또 먹으러 오자면 나는 오지 않는다." 라며 웃는다. 맛이 없었다는 표현으로 국적이 다른 음식을 타박한다. 그렇지만 대접하는 마음까지 폄하하는 건 아니다.
내가 먹은 음식은 싱가폴 식이라 하는데 쌀밥에 쇠고기를 구운 것 같기도 하고 삶은 것 같기도 한 덩어리 몇 개가 나왔다. 양은 좀 넉넉한 편이라 끝에 몇 점은 남겼다. 나 역시 다시 또 오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곳이나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멀리 가서 대접을 했는데 다 먹고 나서 할 인사말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요리에 쌀밥도 나왔는데 동남아산 안남미로 지어 나름대로 고소한 맛이 우리나라 찰진 흰밥과는 또 다른 좋은 맛이다. 그 후에 이야기이나 나는 집에 올 때 이 쌀 한 봉지를 구입해서 짐 가방에 챙겨 와서 한 동안 그 고소한 맛과 향을 즐겼다.
침사츄이 (尖沙阻), 이곳은 내가 혼자라도 다니며 사진도 찍고 가고싶은 곳 이라 하니까 딸이 함께 가야 한다며 동행하게 된 것이다. 내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콩에서 가장 복잡한 중심가라 해도 까짓 빤한 길을 잊어 버려 헤매기야 할까. 내가 문맹도 아니고 앞을 못 보거나 말을 할 수 없는 농아도 아닌데 혹여 길을 잃었다 해도 못 찾아올까 마는 걱정이 되는 것은 노년의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마음이다. 더 진지하고 성실하게 살았어야 할 한번뿐인 인생인데 장난하듯 연습하듯 지나친 세월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식사 후에 스타벅스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씩을 마시고 홍콩의 대표적 경관이라 할 수 있는 中還 (Central)지역을 배경삼아 사진 몇 장을 찍은 후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에는 딸과 가족처럼 지내는 친구이자 언니이며 아이들에게는 이모라고 불리는 여인이 방문해왔다. 밝고 친절하고 긍정적인 성품으로 누구에게나 존중받아 손자아이들도 친 가족 같은 관계로 살아왔다고 한다. 같이 저녁을 먹고 한참 머물다가 돌아갔다. 가족과도 같고 친 형제와도 다름없는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것 다 이루어 주실 줄 믿는다.
그녀는 헤어지면서 "가시기 전에 맛있는 것 대접해 드릴께요.“ 라며 작별 인사를 한다. 결국 끝날 까지 기회를 만들지 못했어도 대접 받은 것 이상의 친근감으로 호의를 느낀다. 딸네와 그 가정과 변하지 않는 우정으로 실생활에서도 또는 영적으로도 좋은 형제로 오랫동안 교우하면 좋겠다. 끝.
2023. 3. 17. 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