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맞는 일요일, 2주일간의 체류 날짜가 달랑 사흘 남았다. 딸과 사위는 우리 항공권을 예약할 때부터 1개월 이상 머물다 가시라고 권했지만 내 생각으로는 1주일이 적합할 듯 했다.그런데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몇 년간 오고 가지 못한 것도 아쉽고 내 나이를 생각해 보니 내 건강을 내 마음대로 장담할 수 없는 때라는 것을 알아 결국2주간 머물기로 계획을 수정했던 것이다.주변에서 가까운 친구들이 그만 세상을 떠나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나 좋은 대로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속절없이빨리 흘러간 날 들은 벌써 돌아갈 준비를 서둘러야할 시점에 이르고 말았다.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 서가에 진열되어있는 책자를 들여다보다가 어느 곳에선가回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글귀를 읽었다.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은 정한 이치이나 떠나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의미가 마음에 든다. 편한 마음으로 헤어졌다가 기쁘게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결코 돌아올 수없는 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점심은 외식(外食)하지 않고 모처럼 집에서 먹었다. 고기를 볶고 찌개를 끓이고 김치와 함께 상추쌈에 매콤짭짤한 양념장을 얹어 식사를 하고나니 한 끼『먹는 것처럼』먹었다. 밖에 나가서 이름도 모를 기름진 음식을 사먹는 것에 비해 만족한 선택을 했다. 준비하는 아내와 딸에게는 성가신 한 끼 일는지 모르지만 이국땅에서 먹는 제대로 된 한류음식은 세계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넉넉할 것 같다.
“아버지, 오후에 어디 가고 싶으세요?” 사위가 묻는다. 관광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여행으로 즐기는 좋은 경험이지만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 역시 필요한 휴식이며 정신적인 안정의 시간이다. 사위도 딸도 일요일하루 편하게 쉬면 좋을 텐데 구태여 나가기를 권하는 것은 부모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보여드리고 기억에 남는 추억꺼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은 충정(衷情)때문일 것이다.
뚜껑 없는 관광버스를 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했더니 다들 좋다고 찬성한다.잘 모르는 시내곳곳을 피곤하게 걷고 타고 하는 것에 비해 이보다 더 편리하고 안전하며 이용요금도 저렴한 관광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 침사추이驛에 내려 뚜껑 없는2층 관광버스에 올랐다. 1층은 쾌적한 실내이지만 높이가 낮아 시야확보가 어렵고 2층은 버스의 옥상 격이라 사면팔방 다 보이는 대신 비바람에 보호막이 없다. 우리는 버스(Open Top Bus) 2층에 앉아 복잡한 도시 중심가를 달린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고 있다.
구름이 잔뜩 낀 회색빛 하늘에서 소리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양 젊은이들 여럿이 함께 차에 올랐다가 하나둘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우리 가족 외 몇 명 만 남았다. 빗방울은 제법 굵어지고 옷은 서서히 젖어든다. 홍콩의 저녁시간, 주말이라 많은 차량에 의해서 복잡한 도로는 정체되고 있다.
우리가 혹 갈 곳 없는 나그네라면 이 비오는 저녁시간이 참 서글플 것 같다.뚜껑 없는 관광버스에 앉아 비를 맞으며 거리를 내려다보는 마음이 얼마나 심난 처량할까.어두워지기 시작한 홍콩도심 휘황한 불빛이 화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집 생각만 간절히 날 것이다.집 떠나온 것에 대한 후회가 적지 않아 비에 젖은 마음은 괴로움에도 젖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갈 곳이 있을 뿐만 아니라 쉴 곳도 잠잘 곳도 마련되어 있다는 현실이 안락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빗물에 온몸이 젖어 추위에 떨어도 뚜껑 없는 관광버스 이곳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귀가를 서둘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