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을 자축하기 위한 가족 여행 차 부산 해운대 글로리 콘도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고가의 반지 선물을 전하는 시간에 아내를 위해서 읽은 글임.
진실을 담아 쓴 이 글을 읽는데 듣는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목이 메어 끝까지 읽지 못하고 주희가 대신 다 읽었다. 아이들은 박수를 치면서 좋은 모습이라며 우리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을 축하했다. 그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기억했다가 먼 훗날 우리가 이세상에 없을 때 부모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으로 간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우리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온 지 오늘로서 36년이 지났습니다. 팔당 댐이 막히기 전, 그러니까 1974년 여름, 남한강변 모래사장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지요. 내 어린 조카들과 뛰어 놀고 있는 한 소녀아이를 처음으로 만나고 어느 댁 따님이냐고 물을 때만 해도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몇 살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지요. 작은 키에 통통하지만 구김살 없어 순수하고 귀엽게 생긴여자아이. 나는 그녀를 우리 조카 들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들은 마을의 어떤소녀인 줄로만 알던 아주 옛날이었지요.
우리들의 만남은 아이들 물놀이 하는 강변에서 장난처럼 시작 되었던 것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지. 며칠이 지나고서야 그날 우리들 만남은 어른들의 계획된 속셈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변에서 아이들과 함께 공놀이를 하고 있던 당신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지요. 그 후 우리는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혼을 하고서도 나는 내 존재감을 잊은 채 자유롭게 퇴근을 하고 휴일이면 친구들과 등산가고 낚시도 즐기며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매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무심하고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신혼의 젊은 남자들이 갖는 풍조와 문화로 되어있을 때였기에 당연한 일로만 알고 지냈지요. 내가 밖으로 나가 세상과 즐기는 동안 당신은 너그러운 듯 까다로운 홀시어머니 모시면서 온갖 시중 다 들며 마음 고생하며 보낸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뒤늦게야 깨닫고 내가 진정 당신의 남편이었는가를 생각게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당신은 식구들을 즐겁고 명랑한 분위기로 이끌어 주던 원만한 성격이었습니다.
항상 모자라는 생활비와 여유 없이 지내는 날이 더 많았는데도 경제적인 문제로는 당신은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지 않았지요. 즐겁고 재밌고 감사한 생활을 하면서 이십여 년을 보낸 것을 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게 되고 차츰 철이 들어가던 무렵 어느 날부터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조금씩 틈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노인에게는 감히 말 할 수 없는 불만의 해결을 위해 당신은 나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중간에서 원만한 남편의 역할을기대 했건만 나 역시 늙어 가시는 어머니에 대하여는 절대 순종하는 길 만이 내가 해야 할 도리로만 알았으니 당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외아들에 효자라는 명예롭지만 온전치 못한 나를 폄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나를 야속하게 생각한 당신의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반발 할 수없었던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당 하며 산다는 자괴감으로 당신은 서서히 자세를 흐트러트리기도 했지요. 어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까. 조금만 더 참고 견딥시다. 그렇게 살아 여기까지 온 지금은 평안한 나날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지... 그 지루하고 희망 없었던 날 들도 지금 생각하면 금 쪽 같이 귀중했던 우리들의 젊은 날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에게 반발하며 집안을 뒤집어 놓았어야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며 그때의 일 들을 후회하지는 않으니 우리가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은 정녕 아닐 것입니다.
막내고모 그렇게 되던 해 어느 날. 우리는 함께 그가 투병하고 있던 기도원으로 향하며 호젓한 산길을 돌아갈 때 당신은 내게 말했지요.“나는 언제고 당신과는 헤어지고 싶어. 어느 시설에 가서 평생 노인들 병간호 하면서 봉사하면서 일생을 살고 싶어” 라고 말할 때 당신은 나에게 얼마나 큰 실망을 했으며 나로 인해서 삶이 얼마나 고단했었나요. 그 후 십년도 더 지난 지금도 나는 그때 내게 들려주던 당신의 각오는 순전히 나로 인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죄스러운 생각뿐이랍니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 볼 때 우리는 즐거운 일 보다는 힘들고 괴로웠던 날들이 더 많았지요. 모든 원인을 생각할 때 내 탓이라는 한 외에 다른 것이 없답니다. 지금도 그 날들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힘들었고 슬픈 기억 괴로웠던 순간들은 다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 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우리들도 10년 후, 아니면 1년 후도 장담할 수없는 노후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나 갖지 못한 아쉬움에 가슴 아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날 까지 근심 없이 살아가게 되기만을 기도 하십시다.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이와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지혜롭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왔을 당신, 나를 만나 원래의 품성대로 살지 못 했노라는 농담 같은 당신의 고백을 들었을 때 나는 지나온 내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답니다. 과연 그러하지요. 자신을 생각할 때 나는 세상에 무엇 하나 이루어 내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남자 만나서 평생을 살아온 것도 어쩌면 당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과 섭리였다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 갖기를 바랍니다.
큰아이 내외가 윤우까지 데리고 외국으로 떠난 뒤에는 빈집에 당신 혼자서 쓸쓸한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요. 그러할수록 필요한 것이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 지금까지 보다 더 합심하며 서로 아끼는 가운데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십시다.
우리가 만나 결혼하고 오늘로서 꼭 36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결혼을 기념하지 못한 위인이 올해는 내 생애 처음으로 작은 선물을 준비 했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며칠 앞으로 다가온 당신의 64번째 생일을 이 자리를 빌어 축하합니다. 행복하게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