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 이야기

윤우의 눈물

 

 

 어제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우리는 기독교 가정인 고로 제삿날은 종교의식에 준하여 지낸다. 홍동백서와 좌포우혜로 제사음식을 陳設하거나 향불에 지방문을 써 붙이지 않고 간단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추도 예배를 드린 지는 삼십년쯤 되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일찍 퇴근해 들어온 아들과 딸 내외, 윤우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찬송가 190장을 부르고 신앙고백과 간단한 권면의 말씀으로 우리들 신앙의 뿌리에 미력하나마 적은 양분을 주었다고 믿으며 순서에 따라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평안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과 돌아가신 부모님 생전에 잘 못해드린 불효에 대한 회개의 기도를 하고 끝으로 윤우네 가정에 대한 기도를 했다. “머지않아 우리 곁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갈 터인데 환경과 기후의 변화에 잘 적응케 하셔서 회사에서 맡은 직분도 잘 감당하게 하시고 특히 건강을 지켜 주시옵소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는 윤우가 하나님 자녀로서 더욱 지혜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이러한 내용의 기도를 끝으로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찬송가를 부르는데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윤우와 눈이 마주쳤다.

 

 오늘 따라 조용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럽다. 다른 때 같으면 예배중이거나 말거나 장난감 자동차나 공룡 모형에 빠져 있었을 텐데 경건한 분위기를 알고 자중하는 것 같아 내심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윤우의 눈이 발갛게 충혈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막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애써 참는 것 같더니 식구들의 시선이 자기한테로 쏠리자 북 바치는 설음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이가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에도 이유 없이 울거나 보챈 적이 별로 없었다. 혹 울더라도 잠깐 만에 그쳤고 우는소리도 G선의 음율 처럼 안정되어 듣기에 그리 시끄러운 편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귀공자처럼 잘 생긴 외모에 울음소리마저 품위를 지녔다며 부드럽고 정겹게 느꼈겠는가. 어린아이들 울음소리의 파장은 데시벨이 높은 관계로 신경을 자극해 짜증스럽기 마련인데 부드럽다니 내 핏줄이기 때문에 너무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아이의 우는 목소리는 순하고 연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지나서부터는 남의 손에 도움을 받아 키우게 되었다. 주로 같은 아파트 내에 있는 육아시설에 맡겨졌는데 두 돌이 채 안되었을 무렵 다니던 어린이 집을 쉬게 하고 우리와 함께 며칠 동안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아이가 심심치 않게 데리고 놀고 흥미를 유발해 주는 데는 오히려 엄마보다 더 요령이 있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니 윤우는 종일을 깔깔 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기의 냄새까지도 좋아하고 혈연관계가 아닌 다른 집 아이라도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아내인데 우리의 핏줄인 윤우를 얼마나 사랑해 주었을까.

 

 우리의 여유 시간이 끝나던 날 오후에 윤우를 어린이 집으로 데려다 줄때였다. 분위기를 눈치로 깨달은 윤우는 제가 가야할 곳이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마침내 건물 현관 앞에 도달하니 손사래를 쳐 가면서 막무가내로 우는 것이었다. 표현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자신의 의사인 “아니야, 아니야” 라며 내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품에서 내리지 않으려 하는 아이를 강제로 떼어놓고 나올 때 윤우는 정말로 어른처럼 서럽게 울었다. 뒤에 남겨두고 우리의 처소로 돌아가는 길 내내 아내도 울었고 나 역시 측은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처연했다.

 한 번은 그 보다 더 어렸을 때였는데 가지고 놀던 헬리콥터 장난감을 잃어버린 뒤였다. 아파트 놀이터 근처 풀 섶에 떨어트리고 들어와서는 다시 그것을 찾으러 나가자는 의사를 말로 표현치 못할 때였다. 의중을 알지 못한 어멈은 아이를 겨우 달래서 데리고 그날 밤 을 재울 때 아이는 또 그렇게 울면서 보챘다. 가지고 놀다가 떨어트려서 잃어버린 장소를 알고 있어 다시 그곳에만 가면 찾을 수 있겠다 싶은데 의사를 표현 할 수 없으니 울음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물론 다음 날 아침 일찍 제 어미를 끌고 나가서 잃어버린 헬리콥터를 기어코 찾아 왔다. 윤우는 어려서부터 이유가 분명한 일로 의해서만 울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아이는 어리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하는 짓이 신사적이다.

 

 오늘 울음을 터트린 것에 대하여 예배가 끝나도록 생각해 봤다. 이제는 자신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현할 줄 알기 때문에 녀석의 의중을 물어보면 안다. 가슴 속에서 밀려나오는 듯한 통곡 소리는 얼른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애절하다. 예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막 시작한 찬송가는 앞으로도 두 절이나 더 남았는데 아이는 울음을 그치려 하지 않는다. 신앙을 권면하는 성경적인 메시지를 이해해서 하나님의 성령이 그 어린것한테도 은혜로 임한 것일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원인을 추측하고 나니 분명한 이유를 알만 했다. 따라서 내 마음도 울컥해 지는 것이었다. 어린것의 생각에 고통스럽다거나 욕구불만에서가 아닌 또 다른 그 무엇이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고 온 가족이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울고 있는 윤우를 달래려고 시도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보아 마음속으로는 함께 눈물 훔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찬송이 끝나고 주기도문으로 추도 예배를 마친 뒤에 윤우는 어미 품에 안겨서 제 방으로 돌아갔다. 한참 만에 울음을 멈추고 어린아이답게 또 다른 놀이에 빠져있을 때 딸이 돌아와서 말했다.

 

 제 방으로 돌아간 윤우가 어미한테 말 했다는 이야기의 내용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 졌다. ‘엄마 나 미국가지 않을래요.... 여기서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같이 살래요...’ 윤우는 할아버지의 기도문을 듣고 나서 자신이 가야 한다는 외국행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했나보다. 며칠 전에 할미가 ‘윤우가 외국으로 가서 살게 되면 할머니는 외로워서 어떻게 할까’ 라는 물음에 할머니도 같이 가자며 울음을 터트렸던 그날의 섭섭했던 기억이 내 기도내용을 들으면서 또다시 생각났던 것이 분명하다.

 

 윤우는 이 집과 정든 할미와 할아버지로부터 떠나가기 싫어하고 할머니나 할아범 역시 윤우를 낮선 땅으로 내보내기 싫다. 그러나 어찌하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는가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오늘 흘린 감성적인 눈물의 의미를 잊지 말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2011. 7.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우 이야기  (0) 2012.03.05
설흔 여섯번째 결혼 기념일에  (0) 2011.11.21
윤우 이야기 (작별 상상편)  (0) 2011.07.14
영정사진 찍던 날  (0) 2011.05.02
[수필] 윤우 이야기 (위험한 윤우편)  (0) 2010.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