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2부 예배를 드리는 중인데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은근히 걱정된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일기예보를 확인했더니 오전 9시 부터 서울지방에 비소식이 있다. 큰 우산을 챙겨들고 나섰다.
내가 사는 남양주에서 교회까지의 교통편은 소형 전세버스를 이용한다. 그것은 교회 측에서 이 지역에 사는 교우들의 편의를 위해서 특별히 임대하여 보내주는 노란색 소형버스다.
오가는 길이 멀어도 계절에 관계없이 쾌적한 기분으로 오간다. 무더운 날은 시원하게 그리고 추운 계절에는 적합한 열기로 차내 온도를 유지시켜 준다. 그런데 오늘아침 우산을 챙겨 나왔지만 그 소형 버스에 놓아둔 채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빈 차 안에서 예배 끝나기를 기다리던 우산이 나의건망증을 야유하거나 깜빡 증세에 시달리는 나를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예배를 마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밖을 내다보니 (교회 엘리베이터는 벽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바깥이 다 보인다) 그 누구도 우산 받쳐 든 행인이 안 보인다. 비가 내리지 않아 우산 없어도 괜찮으니 다행이다. 안심을 하면서 1층에 내려 왔는데 그 순간부터 빗줄기가 언뜩 언뜩 교회 마당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굵은 빗방울로 변해 소나기처럼 내리 꽂힌다.
밖으로 나가려던 많은 교우들이 되돌아 건물 안으로 밀려들면서 현관입구는 별안간에 혼잡한 분위기가 되었다. 쉽게 그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비를 맞자니 거의 폭포 같은 빗줄기를 맞는것도 큰 각오와 결심이 없다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리석 바닥위로 떨어지는 빗물은 넓게 번지고 튀어 올라 주변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고 나처럼 우산 없는 사람들은 속수무책 우왕좌왕 혼돈에 빠졌다. 노란 버스가 주차해 있는 장소는 교회로부터 그리 먼 곳은 아니나 이 비를 다 맞으면서 걷기에는 멀다. 어찌 할까.
그런데 이때 나에게 유쾌한 반전이 생겼다. 낮 익은 중년의 남자가 내 앞으로 우산을 내민다. 그것도 대형 헝겊 방수 우산이다.
버스에서 예배 끝나기를 기다리던 노란색 소형버스 운전기사께서 이와 같은 반짝이는 지혜로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이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교회 버스를 탈 때엔 분명히 우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려서 교회에 들어갈 때는 빈손으로 가고 있는 뒷모습을 예의주시 하며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풍랑 이는 바다에서 구조선을 만난 것 같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상상치도 않았던 관심과 뜻하지 않은 배려가 가슴을 울린다. 일상생활 중에 맞는 작은 감동이다. 갈길 몰라 허둥대고 막막해 하던 순간에 한줄기 빛이 되어 길을 인도해주시는 우리주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사랑을 오늘 버스 기사님을 통해 체험케 하신다.
감사한 마음을 잊어버리기 전에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 폰을 이용해 얼른 적어서 기록한다. 오늘예배 만족, 충만. 할렐루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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