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좀 더 발전시켰다면 오늘과 같이 취미생활에 머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노년에 이르러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게 되어 복지관에 등록을 하고 무엇인가 참여할 과목을 찾기로 했다. 많은 프로그램 중 남은 인생길에 기쁨이 될 만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인문학 계통의 강좌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 『사진촬영 및 기능의 이해』라는 과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영상예술에 대한 부족한 이론과 실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젊은시절부터 비교적 고급 사진기는 늘 가지고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 모습을 찍어 남긴 것이 많다. 그런데 정작 내 사진은 별로 없다. 가끔은 신분증이나 문예지 프로필용 사진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가까운 이와 단체로 찍은 사진 중 용도에 적당한 내 모습만 Trimming하여 사용한 적도 있었다.
내 자화상을 사진으로 만들자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어떤 일의 중심이 되거나 나를 들어내는데 익숙하지 않은 옹졸함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 인물에 대한 나 자신의 好感度가 높지 않다는 이유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본인의 외모가 남에게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이목구비의 구성이 너무나 평범하거나 좀 빠지는 편이라 균형 잡힌 배열로 세련된 모습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외모를 가지고 인생의 황혼기까지 왔는데 아직도 인물에 대한 시비를 한들 어쩔 것인가. 그냥 나의 나 된 특성으로 알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나 자신을 편하게 대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러한 이유로 나의 자화상을 만드는 일에는 소홀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인생의 노년기에 이르러 자화상을 찍어야 할 일이 생겼다. 이번의 셀프촬영은 수강하고 있는 사진반에서 요구하는 하나의 미션인 관계로 피하거나 사양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일요일 오후 아파트 뒤편 작은 숲, 통행하는 이가 뜸한 곳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DSLR 카메라를 준비했다. 혼자서 찍는 Self 사진의 어려움은 정확한 Pint 맞추기 인데 인물사진 촬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도 정확한 거리 맞추기가 아닌가.
비교적 뒷배경이 고르고 단순한 숲을 찾아 거리를 가늠하고 자동셔터를 작동시킨다. 거리를 다시 확인하는데 눈이 어두워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셔터를 누르고 급한 걸음으로 카메라 앞에 가서 렌즈를 응시하는 내모습을 혹 아파트 창문을 통해 주시하는 이가 있었다면 노년의 행동이 우습기도 하고 왜 저럴까 의아해 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십 수회를 반복하고 한 컷이라도 성공한 장면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내 컴퓨터에 넣고 확인한 결과는 한 장면도 사용할 만한 영상이 없다. 실패했다.
사진 강의를 맡으신 교수께서 이러한 어려움을 간파하고 다른 방법으로 미션을 바꾼다. 회원 각자는 상대방의 초상을 촬영해 주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는 젊어서 한 가락씩 했을 소위 훈남으로 호칭되는 미남 미녀 회원들 사이에 속해있는 내게는 정말로 곤혹스러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나일 뿐인데 좋은 인물에 비교됨으로 상대성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연전에 가깝게 지내는 선배 친지들의 영정으로 쓸 인생사진을 촬영해 준 적이 있었다. 그들의 초상을 카메라에 담던 날 조금이라도 젊은 모습을 남기기 위해서 나도 앉아 한 컷 찍힌 모습을 저장해 둔 파일이 있었다. 부족한 자화상이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삭제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이것을 미션에 대한 과제물로 사용하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내 인물에 감사한 것들도 있다. 세상은 좋은 인물의 소유자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소 처지거나 모자라는 외모를 가지고도 세상을 위한 봉사와 헌신을 함으로 얼마든지 좋은 대우와 인격적 존경을 받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는 세상이 정해놓고 지켜야 할 범주를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은 별로 없다. 운전중이나 보행시에 교통법규를 살짝 위반한 것 외에 사회적 도덕성을 지켜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기에 힘쓰며 여기까지 왔다. 이웃의 경사에 함께 기뻐했고 안타까운 일에 대하여는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다소 부족한 외모일지라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과 우정을 공유하며 살기를 원한다. 좋은 외모를 가지고도 나쁜 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는 『인물이 아깝다』 는 혼잣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좋은 인물로 태어난다는 것이 사회생활 하는데 얼마나 큰 복인지 안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부족한 인물에 비해서 인상은 나쁘지 않아 사회생활 하는데 오히려 좋은 조건일 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