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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수필

[수필] 더 중요한 것 (1,2차 퇴고 완료)

  태재고개에서 분당 방면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교통량에 비해서 흐름은 원활한 편이다. 열병합 발전소의 높은 굴뚝을 왼쪽에 두고 페달을 밟는 사이에 고풍스러워 보이는 요한 성당을 지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잘 정돈된 도로를 주행하면서 차량의 계기판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지정 속도인 시속 60Km를 위반하기 십상이다. 오포면에서 분당 성남방면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곳은 내리막길이라 자칫 과속하는 쾌감에 빠지기 쉽다. 세상을 모범적으로만 살아온 사람이거나 자동차 운전에 지혜롭고 능숙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도로일수록 조심하며 정해진 법규를 잘 지킨다. 혹 졸음운전의 유혹에 넘어간 이들은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어 신호등도 안내표지판도 다 소용이 없다.

  며칠 전 오후 두시쯤 차를 운전하며 이 길을 지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라 나른함에 조심해야할 시간이다. 율동공원 앞을 지나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변하자 차량들이 멈춰 선다. 나는 돌마로 방향으로 우회전 할 목적으로 3차선을 주행하다가 적색 신호로 정지했다. 그 순간 2차선으로 주행해 오던 RV승용차 한대가 신호대기 중이던 고급승용차를 사정없이 추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피해차량의 뒷부분과 가해 차량의 앞부분이 반쯤 날아가는 사고를 눈앞에서 보면서 처음 겪는 사고 장면 목격으로 큰 공포감에 쌓였다.  피해차량은 저만큼 튕겨나가 인도쪽으로 멈춰섰고 가해 차량은 내차 앞을 가로막아 겨우 멈췄다.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유리조각과 깨어진 플라스틱 파편들이 주변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바로 옆 차선에 서있던 내 차는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피해가 없다. 사고차량 두 대를 눈 여겨 보니 차내는 조용할 뿐  움직임이 없다. 엔진부위도 상했을 테니 화염에 싸일수도 있는 순간이다. 내차를 안전한 곳에 주차시켜놓고 사고 차량으로 다가 갔다. 혹시 인명피해가 있어 도움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접근했다. 마침 가해차량의 문이 열리더니 이마부분에 피를 흘리는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면서 황당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말한다. “깜빡 졸았어요.”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라며 정확한 발음으로 말한다. 잠깐 들여다 본 차내 앞좌석에는 바람빠진 에어백이 사명을 다하고 널브러 졌다.  이것이 작동한 덕에 심한 부상은 당하지 않은 것 같다.

  피해차량의 문을 열려 했더니 문짝이 파손된 탓에 반쯤만 열린다. 좁은 틈새로 운전자 여인이 보인다. 그녀는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듯 나를 보면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크게 추돌사고가 났다는 사실 조차도 깨닫지 못할 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피는 흐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외형적 상처는 없어 보인다. 잠시 뒤 경찰차가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내 길을 가는데 쉽게 진정이 안 된다. 큰 사고를 목격하면 페달 밟는 발이 떨린다더니 그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 평정심을 찾자 좀 전에 목격한 사고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안될것 같다. 가해차량이 만약 내가 진행하고 있는 차선으로 오다가 마음 놓고 내 차를 추돌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피해 차량은 튼튼한 고급승용차이니 웬만한 충격에는 견딜 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뒷부분 반쯤이 파손된 것을 생각할 때 상대적으로 작은 내 차는 반파이상의 충격으로 운전자의 목숨까지도 온전했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가 없다.

  교통사고는 나 혼자만 조심한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사방 어느곳에서 예고 없이 덮치는 사고를 어떻게 피 할 수 있을까.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도 혹은 찻집에 앉아있을 때 유리벽을 뚫고 들이 닥치는 자동차에 의해서도 피해를 당 할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무심하게 인도를 걷던 어린학생들이 음주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로 숨진 사건도 발생했다. 사고는 내가 잠든 사이에도 일어나고 전혀 예상치 않은 장소와 시간에도 일어나는 끔찍한 불행이다.

  행운 또는 불운에 대해서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뜻밖의 행운으로 만족해 한 적이 없다. 푸짐한 행사의 경품잔치에서도 당첨된 적이 없다. 이제는 마음을 비우니 섭섭할 것은 없어도 내 이름이 불려 본부석 앞으로 뛰어나가 받은 경품을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폼나게 제스처 한 번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재미로 긁어보는 스포츠 복권의 행운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 그쪽 분야에는 관심조차 없어졌다. 그렇다고 별난 不運으로 인해서 한탄한 적도 없으니 일한 만큼 받았고 받은 만큼 쓰면서 평범한 일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살다보니 행운이 비켜 간다면 불운 역시 나를 비켜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비뽑기에서 탈락되거나 무작위적 선발에 뽑히지 않은 것을 애석해 할 필요는 없다. 별의별 강력사건이 수시로 발생하는 세상에 불특정다수를 향한 범죄의 대상으로 당첨되지 않은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코로나 팬데믹은 발생한지 4년 가까이 지나 많은 이 들이 생명을 잃거나 큰 고생을 했다. 나는 코로나에 걸리는 불운에도 당첨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이 방역에 무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심했는데도 감염이 되었고 방심했는데도 무사한 이들도 많다. 철저하게 조심을 하지 않았어도 바이러스는 나를 피해갔다. 마치 경품당첨의 행운이 나를 비켜 갔듯이 말이다.

  교통사고는 정면에서도 일어나고 뒤에서도 일어난다. 경품행사에서 당첨되는 행운은 우연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노력한다고 경품에 당첨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교통사고 역시 나만 조심하거나 노력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경품행사에는 당첨 되지 않더라도 불행한 일에 당첨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

                                                              2023 / 9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