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에세이집의 제목이다. 그렇지만 청춘들만 아픈 것은 아니다. 세상 살만큼 살아온 어른들은 육신 말고도 아픈 곳이 더 많다. 자식들의 성장기에 충분한 자양분으로 충족하게 해 주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보면 마음이 아프다. 또한 계획했던 대로 이루지 못한 세상 적 성취도에 대한 아쉬움도 생각할수록 아프고 내가 부모가 된 뒤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내 부모의 가슴에 걱정과 실망감을 안겨 주었던 일 또한 가슴 아프다.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간 친지와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은 또 어떠한가. 지난날을 돌아보면 가슴 아픈 기억들로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런데 정작 참기 힘든 아픔은 육신의 질병이나 부상負傷등으로 인한 통증이다. 살면서 크고 작은 육신의 상처는 4천 번쯤 되는데 그중에 95퍼센트는 손 부위에 입는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살아있는 한 끊임없는 노동의 방식은 대개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천성이 굼뜨거나 데면스러운 면이 없지 않은 탓에 손가락이 여러 번 수난을 겪었다. 어느 날 퇴근 후에 거실 벽에 시멘트 못을 박아야 할 일이 생겼다. 얼른 끝내려는 생각으로 못을 때리는데 잠깐 한눈을 팔았던지 장도리는 못이 아닌 내 엄지손가락을 힘차게 내려쳤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자동차 운행을 마치고 도어를 닫는데 손가락을 채 피하지 못한 상태에서 힘껏 닫았다. 문틈에서 빠지지 않는 손가락을 빼내기 위해서 문을 다시 열었다. 두 손가락에서는 이미 검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한 번이 더 있다. 사무실 출입문 유리도어는 유압식 힌지(Hinge)에 의해서 개폐의 속도가 조절되는 방식이다. 공교로운 고장으로 유압 작용이 온전치 못한 상태라 서로 교차하는 유리문의 순간속도는 공포 수준이었다. 막 닫히는 유리문과 유리문 사이에 손가락이 끼어 거의 절단 수준에 까지 이르렀던 경험도 있다. 그 외에도 더 있지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실수로 인해서 사고 때마다 손톱이 빠지고 새로 나고 하는 동안 6개월쯤 고생했다.
그런데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어 큰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각종 암이 발병하는 초기에는 아무런 통증이 없어 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다. 이로 인한 불행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례다. 한센병의 비극 역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오래전 원인모를 통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새벽녘 잠결에 아랫배 부분이 은근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나 통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짚어봤다. 저녁 식사에 문제가 있었을까. 그러나 소화기나 장기의 이상에 의한 통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의미를 새겨 봐야 할 아픔인 듯 기분 나쁜 증상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새벽 응급실을 생각했으나 마땅치 않은 교통편으로 망설이는 틈에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았고 그 후 한동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통증은 한 달쯤 후에 다시 찾아왔다. 아팠던 기억마저도 잊고 지내던 어느 새벽녘 지난번과 거의 같은 시각에 낮 익은 손님처럼 찾아왔다. 원치 않은 방문객으로 놀랐어야 했는데 그냥 지나다가 들른 이웃을 맞듯 태연하게 대한 것은 반시간쯤 지나면 돌아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더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는 손님은 약속한 것처럼 금방 돌아갔지만 혈뇨血尿로 보이는 분홍색 소변 줄기를 남기고 갔다. 통증의 원인이 아닐까 싶었지만 분주한 일상으로 또 무심하게 지나쳤다. 대략 한 달쯤 뒤에 전과 동일한 증상으로 새벽잠에서 깨었다. 동네 의원을 찾은 것은 그날 낮이었는데 최초에 증상을 느낀 날로부터 석 달쯤 지난 뒤였다.
깊은 의학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원장 선생님은 내게 소견서를 써주며 암 전문 병원을 소개한다. 종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병원에 외래 진료 예약을 하면서 큰 병이 찾아온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며칠을 기다려 순서가 되었고 여러 가지 정밀검사를 하면서 비뇨기과 과장은 내게 말한다. “방광염일 수도 있고 방광에 암이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여간 아니다.
불길한 예감은 대개 적중률이 높다. 결과를 기다리는 본인과 가족들은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으려 했고 설마라고 하는 요행에 명운을 맡기기도 했지만 종당에는 절대자의 주관하심에 따르기로 자신과 합의한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모든 것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면 그 아쉬움과 두려운 마음은 어떻게 감당하랴.
며칠 뒤 방광에 종양이 발생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다행인 것은 초기에 발견되어 항암이나 개복開腹은 하지 않고 내시경으로 암 부위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술은 진행되었고 며칠 동안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그러나 방광암의 재발 확률은 70퍼센트 이상임으로 다년간 두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후에 한 달에 한 번 혹은 삼 개월에 한 번 또는 1년에 한 번씩 십여 년에 걸친 내시경 검사로 상태를 확인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한 번도 재발하지 않은 것은 초자연적인 섭리인 줄 믿으니 감사할 뿐이다.
그 이상한 통증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나를 맡아 치료를 담당했고 관리해 주던 비뇨기과 과장 선생님은 정년으로 현직에서 물러나면서 내게 부탁을 한다. '통증과 방광암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다시 하복부의 통증이 있거든 지체하지 말고 내원하시라' 는 조언을 했다. 그러나 그 후 이십 년 가까이 지나도록 그날의 이상한 통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통증이 없기 때문에 많은 환우들이 무심하게 병을 키운다고 하는 암. 인생이 끝나는 줄 알고 체념 상태에 까지 이르렀던 절망의 늪에서 다시금 돌아와 이만한 나이를 살아가는 행운은 그날 새벽 하복부에 발생한 원인 모를 통증으로 인함이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통증인가. 끝.
2022. 5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