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정보가 많은 세상에 필기구 하나는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길에서나 혹 어떤 모임에서라도 급하게 기록할 일이 생겼는데 주머니에 볼펜 하나 없다면 쓰기를 포기하거나 그 누구에게라도 빌려 써야 한다. 그런데 그 누구라는 이가 바로 나 본인이어서 도움을 줄 수 없다면 크게 결례라도 한 것처럼 미안하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나는 소위 글을 쓰는 수필 작가라 하면서도 볼펜도 없이 외출을 했다가 기록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곤욕을 당한 적이 많다.
볼펜이 나오기 전에는 연필이나 펜으로 필기를 했다. 중학생만 되어도 펜을 사용하던 시절 어린 나이에 잉크병 관리가 미숙해 책가방 겉으로 새어 나오는 경우도 흔했다. 그때를 살아온 이들이라면 손이나 교복 바지에 퍼런 잉크 자국을 묻히고 다닌 적이 많았을 것이다. 볼펜이 개발된 것은 1940년대 초반이었으나 국내에 들어온 것은 해방과 더불어 미군에 의해서 였다고 알려졌다. 60년대 초반 국내생산 볼펜이 보급되면서부터 편리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필기구로써 획기적이었던 볼펜은 물속에서도 쓸 수 있다는 신비로움과 미세한 볼이 자유롭게 움직여 매끄럽게 필기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필체도 향상되는 이점을 얻은 이도 많다.
그러나 고급 필기구는 만년필이다. 만년필은 19세기 초 영국에서 처음으로 특허 등록을 했다. 그렇지만 잉크의 흐름이 불완전하여 활용하지 못하다가 1884년 미국의 보험 외판원인 워터맨(LE Water man)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재발명한 것이 만년필의 효시가 되었다. 국내에는 1897년 일본을 통해서 워터맨 만년필이 수입되었다는 기록이 정설로 남아있다. 잉크병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한 펜에 비하면 얼마나 편리한 필기구인가. 이 발명품은 잉크가 연못에서 샘솟듯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서 화운틴 펜 (Fountain pen)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만년필은 필기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래 사용해서 손때가 묻어 애정이 담긴 만년필은 내 분신처럼 소중하게 취급된다. 귀하게 사용하던 만년필을 혹시 그 누군가 주인 몰래 채 갔거나 분실하게 되면 내 영혼을 잃어버린 듯 허탈감에 빠지기도 한다. 전후(戰後) 어지럽던 시절에는 주머니에 있는 만년필을 몰래 뽑아가는 쓰리꾼이 많아 이것을 찾으러 온 시내 중고시장을 헤매던 사람도 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는 만년필의 질과 가격은 천차만별인데 쓰는 이의 습관이나 관리방법에 따라 수명도 질도 달라진다. 고급 만년필은 그 누가 사용하더라도 인품과 지적 수준까지도 돋보이게 하는 필기구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결혼식 선물로 신랑에게 만년필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았고 입학이나 졸업식에 빠지지 않는 축하 선물 목록 중 하나였다. 또한 가까운 친구에게나 아쉽게 이별하지 않을 수없는 정인(情人)에게 마지막 정표로 가지고 있던 만년필을 선물로 주면 받는 이 주는 이 모두 애틋한 마음이 오래간다.
김소운의 ''외투"라는 수필에 외투 대신 만년필을 선물하는 장면이 가슴을 울린다. 북만주에서 농장을 운영하다가 금전적인 문제가 있어 잠시 귀국했던 청마 유치환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추운 나라로 떠나가는 날 경성역에서 그를 배웅한다.
기차 떠날 시간이 가까웠다.
내 전신을 둘러보아야 청마에게 줄 건 아무것도 없고, 포켓 속에 꽂힌 만년필 한 자루가 손에 만져질 뿐이다. 내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불란서제 ‘콩 쿠링’-요즈음, 파카니 오터맨 따위는 명함도 못 들여놓을 초고급 만년필이다. 당시 16원이라던 이 만년필은 일본 안에도 열 자루가 없다고 했다.
“만년필 가졌나?” -불쑥 묻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 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내어 나를 준다.
그것을 받아서 내 주머니에 꽂고, 콩 쿠링을 청마 손에 쥐어 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防寒具)도 아니련만, 그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다는 기분이었다.
김소운의 수필 "외투" 중 일부
최근에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 받았다. 이름 있는 명품으로 알려진 이 만년필을 나에게 내밀면서 그는 비싸지 않은 물건이라며 겸손하고도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60대 가까이 되었을 고상한 인품의 이 남자는 내가 소속된 합창 모임을 주관하는 리더 (Leader)다. *합창단이 결성된지는 내 후년이면 40년이다. 3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의 남성으로만 구성된 전 단원 중에서 최고령에 가까운 나는 살아온 세월만큼 남은 날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여러 단원들과는 프라이버시에 저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편이다. 한 세대 이상을 함께 하는 동안 친근했던 여러 단원들이 생활환경의 변화로 우리와 헤어지기도 했고 형제처럼 지내던 동료들이 그만 세상을 떠난 것을 돌아보면 인간적 슬픔으로 가슴 아플 때가 많다. 오직 합창음악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초창기부터 합류했던 나는 음악적 기여로 인해서 보람 있는 만년을 살아가고 있다.
80여 명의 단원들에게 생일 축하 엽서를 보내는 관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생일이 그달 초순이건 말건 한 달에 한 번 무더기로 발송하는 엽서는 내용까지도 인쇄되어 천편이라도 일률적이다. 이와 같이 영혼 없는 메시지로 받는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회의를 느끼는 단원이 나뿐만이 아니었지 싶다. 각자의 처지에 맞는 생일 축하 메시지를 손글씨로 작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편과 처지를 알아 적합한 내용을 작성할 때도 있고 그 이름자를 기본으로 삼행시를 쓸 때도 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 누구와 중복되는 내용은 배제하기로 원칙을 세우니 그것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축하 내용을 구상하고 볼펜으로 옮겨 쓰다 보면 나 자신도 축하받을 만한 내 세상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아 행복하다.
정작 나 자신은 생일축하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리더가 알아냈을 것이다. 내 생일이 돌아오는 어느 날 나에게 한 장의 우편물이 도착한다. 나 역시 생후 처음으로 받아 읽는 리더의 손글씨로 적은 축하 내용이 마음을 감동케 한다. 그날 내게 전달된 또 다른 선물인 만년필은 축하 엽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내가 장만하려 했던 꼭 필요한 필기도구다. 생각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리더답다.
감사한 이에게 선물로 드리기에 좋은 만년필. 북만주로 떠나는 청마의 손에 프랑스제 콩 쿠링을 쥐어주던 김소운의 선물만큼 내가 받은 만년필이 나에게 따듯한 외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모든 단원들의 마음에 더 따듯한 글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미천한 문장력으로 인텔리 단원들의 지적 수준을 다 채울 수가 있을는지. 내 육신과 정신이 소진되기 전 그만 손에서 펜을 놓을 때가 되는 날 내 주머니 속의 파카 만년필은 뒤를 잇는 후배 청마에게 기꺼이 선사하리라. 펜촉을 길들이고 다듬어서 진정한 명품 만년필로 만들어 그에게 물려 주리라. 끝.
2022년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30호 사화집 게재함
* 광림남성성가단
'신작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노인 흉 보기 (1,2차 퇴고 완료) (0) | 2022.05.27 |
---|---|
[수필]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1,2차 퇴고 완료) (0) | 2022.05.18 |
[수필] 고마운 통증 (1,2차 퇴고 완료) (0) | 2022.05.03 |
[수필] 내 주치의 (1,2차 퇴고 완료) (0) | 2022.04.09 |
[수필] 서울에서 길 찾기 (1,2차 퇴고 완료) (0) | 2022.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