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 들어 딸네가 살고 있는 홍콩에 다녀왔다. 1월 6일부터 10일 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이었는데 지루하거나 시간에 쫒기지 않는 상태에서 적당히 흥미롭고 적당히 고단한 시내 관광을 즐겼다. 애초의 방문 목적도 그러했지만 나는 유람이나 여행의 의미보다는 손자아이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고도 행복한 날들을 보내며 약간은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돌아왔다.
벌써 오래전부터 딸과 사위로부터 ‘한번 다녀가시라’ 는 請을 받았지만 여기사정도 있고 아내의 건강이나 병원 다니는 일정, 그리고 둘째 딸이 살고 있는 춘천 행보가 또 다른 삶의 리듬으로 자리 잡은 관계로 쉽게 시간 내기가 어려워 미루고 미루다가 신년 들어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아무리 춥지 않은 겨울이라 해도 영하권에 머무는 날이 많은 이곳에 살다가 섭씨 17-8도를 유지하는 따듯한 남국으로 이동하고 보니 우리가 살아가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창밖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이나 가로수의 잎들은 아직도 새파랗게 청청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그곳은 지금이 한창 겨울철을 보내고 있는 중이란다. 여기 10월 초중순의 날씨와 같이 쾌적한 그곳이지만 현지인 들은 겨울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이 활기차게 보인다. 사시사철 실내에 난방기구가 전혀 없는 지역이다 보니 여름에 비해서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추위를 느낀다는 설명이 이해가 된다.
첫째 날인가 둘째 날인가 따질 것도 없이 그 나라의 어디를 언제 다녀왔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따이오 (大澳) 라고 하는 홍콩의 원주민 어촌 마을은 퍽 인상적이었다. 지난 2012년도에 갔을 때는 들러본 적이 없는 곳이라 눈여겨보았다. 바다에 인접한 수상가옥과도 별다르지 않은 주거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터전이 그리 정결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넓지 않은 그곳의 역사관을 둘러보면서 그들의 선조들이 살아온 터전을 이어받아 전통을 소중하게 유지하는 것 같아 공감과 이해가 되었다. 주민들은 지금도 그 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판매와 내방객들에게 음식 제공을 주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곧 뒤집힐 것 같은 작은 배를 타고 인근 바다로 나가 먼 곳을 바라보니 마카오에서부터 이곳으로 연결되는 교량을 건설 중에 있다는 현장이 관심을 끌었다.
홍콩의 야경 관광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피크』 에도 올라갔는데 낮 시간인 관계로 야경이 아닌 맨얼굴의 홍콩도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그날은 홍콩 섬 일대를 걸어서 다닌 관계로 그곳 뒷골목의 풍물도 경험했으며 『침사츄이』 에서 홍콩 섬을 바라보면서 휘황한 밤 경치를 감상하는 기회도 가졌다. 그 화려한 불빛 속에는 그네들의 진솔한 역사가 깃들여 있으며 그 찬란한 불빛 속에서도 어렵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군상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화려한 불빛만큼 빛나는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힘든 인생을 사는 이들이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도 있기 마련이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감상하며 여유 있는 척 관광을 즐기는 각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 역시 나처럼 그저 그렇게 살다가 어떤 기회가 있어 이곳을 찾아왔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좀 비관적 관점으로 본 것일까.
걷거나 혹은 차를 타고 가 볼만한 곳을 찾아 4박5일간을 다녔다. 아니 그곳을 떠나는 날은 별로 갈 시간이 없었으니 4박4일간 그들이 먹는 음식도 먹었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이층버스나 홍콩 지하철도 갈아타면서 많은 곳을 섭렵했다. 동양권의 풍속이란 대개가 엇비슷한 관계로 전혀 이질적인 느낌을 받은 곳은 없었어도 관우 를 神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는 민속 신앙이 특정한 곳에서 향내를 풍기고 있는 것은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풍속이나 유적지 혹은 관광지에 내가 관심과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린 손자 녀석들을 한 시간이라도 더 보아두고 싶을 뿐이었다.
딸네 가정은 낯선 타국에서도 이웃에 친한 지인들을 사귀어 서로 돕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면서 진정한 이웃사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경제적으로도 웬만큼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싶은 것은 아이들을 돌보는 다른 나라의 젊은 도우미를 채용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특한 일이다.
며칠 전에 막 말문이 터졌다는 둘째 손자인 아인이 녀석은 귀엽기가 이루 말로다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따라 하려하는 그 어쭙잖은 발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의 소리인가. 나는 어떤 좋은 곳의 관광이나 먹거리 보다는 아인이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제일 좋은 힐링의 기회가 되었다. 귀국할 때에도 홍콩공항까지 따라 나와서 헤어지기 직전까지 그 어린 발음을 듣느라 헤어질 때의 섭섭한 감정이 더 했을 뿐만 아니라 비행기 내에서도 서울에 도착 한 뒤 지금까지도 녀석의 모습과 소리가 귀에 들리고 눈이 밟히고 있다.
첫째 손자인 윤우는 이제 우리 나이로 아홉 살이 되었다. 더 어릴 적에 비해서 *수려한 외모에 (이 표현은 내 손자이기 때문에 나만 느끼는 것일뿐 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달라진 점은 없으나 전에 비해서 말문을 닫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두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서히 개성이 자리 잡혀 가는 현상일까. 무엇을 물어야만 대답을 하는 녀석은 모처럼 만난 할아범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어렵게 여기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녀석은 아침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독서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좀 성급한 희망이긴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학구적인 습관을 생활화해서 훗날 올 곧은 학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녀석의 품성과 정서를 생각하고 때때로 남다른 그림솜씨로 어른들을 감동케 하는 것으로 보아 예능계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조립하는 놀이에 심취해있다거나 탐구영역에 관한 책을 즐겨 읽으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이공계열의 어떤 전문적 학문에 전념하여 강단에 서는 기회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혼자 상상해 보았다. 물론 나는 이 세상을 떠난 한참 훗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니 나는 그 아이의 장래를 볼 수는 없다.
그러그러하게 그곳 체류기간 4박을 마쳤다. 아내는 그곳에 남겨둔 채 나 혼자서 인천행 비행기 제주 에어라인에 몸을 실었다. 고도 일만 미터 상공을 시속 팔백 키로 미터의 속도로 나르는 동안 좁은 자리에 앉아있었어도 전혀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눈에 밟히는 아인이 생각 때문이었다.
이튿날 서울의 수은주는 영하 7도를 가리킨다. 겨울이란 겨울답게 추워야 이듬해 농사도 잘 된다고 하니 달갑게 추위를 견딘다. 일상으로의 복귀를 한 지 오늘로 3일째. 까짓것 추위야 어떻든 간에 두고 온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달콤하게도 하고 더러는 괴롭게도 하고 있다. 올 여름방학이 되면 다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끝)
20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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