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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새의 속삭임

외톨이 가장

 

 

자식들 키울 때에 무릎에 앉혀

그 입에 밥 떠 먹여 준 적 없었네.

출근해야 할 시간이 급하니까.

 

퇴근한 아빠는 고단하고 시장하다는 이유로

아내가 먹이고 늙은 어머니가 먹여 키웠지.

 

늦은 밤 아기가 괴로워 보챌 때에도

아빠는 내일아침 출근해야 하니까 편히 자야했지.

 

아이를 들쳐 업은 아내는 밖으로 나가 아기를 재운 뒤에야

방으로 들어왔지.

 

자다가 살짝 눈을 떠보면

아내의 등에 업힌 아기는 겨우 잠 들었나 본데

아내는 아기를 업은 채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네.

 

피곤한 몸은 나뿐인가

종일 아이 셋 돌보고 삼시세끼 설거지

온갖 집안일에 세탁기 없는 빨래며 청소일

홀시어미 외며느리 쉽지 않은 시집살이까지

 

나보다 더 고단하고

나보다 더 집안을 위해 애쓰는 사람은 아내라는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나는 돈 벌러 나가야 하니까

편하게 자야 했고

퇴근한 아빠는 고단하고 시장하니까 편히 먹는 것

당연한 줄 알았네.

 

아기 밥은 엄마가 먹여주어야 하는 줄만 알았지

나는 집안에 가장이니까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때는 왜 몰랐을까.

 

뭐 대단한 가장이라고

뭐 대단한 돈 벌어온다고

뭐 대단한 출세한다고

집안일에 그리도 무심했을까.

 

 

잘못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네.

돌아보니 나는 아빠노릇 한 것 없어

아이 만드는 일에 협조 한 것과 호적상 아빠라는 이름 말고.

 

요즘 젊은 아빠들 살아가는 모습 보니

나 아빠 노릇하던 시절이 부끄럽기 한이 없네.

 

그때의 내 아기들 이제는 엄마 아빠 되어

아기 함께 씻기고 아빠가 먹여주고

늦은 밤 아빠가 잠재우는 모습 보니

그때의 나는 얼마나 무심한 아버지였나.

 

부끄러운 그날의 나는

이제와 손자들 재워주려 해도 아기가 싫어하네.

먹여주려 해도 손자 놈이 고개를 돌리네

씻겨주려 해도 할미나 엄마를 찾으니

나는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무심한 가장.

 

아이 씻겨 준 적 없어 그 방법 모르는 늙은 할아범

먹여준 적 없어 그 요령모르는 무식한 할아범.

 

내 젊은 시절은 모든 게 부끄러움뿐

자식들 대할 때마다 부끄러운 그 때의 기억에

그 잘난 가장은 외톨이가 되었네.

새들조차 날지 않는 고적한 빈들에 혼자 서 있네.

 

나이 들어 할 일 없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

나이 들어 가족들 위해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식들에게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

 

이제야 알았네.

자식을 위하고

아내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내 인생을 위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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