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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새의 속삭임

薔薇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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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시멘트 담벼락에 장미 한그루가 서 있는지 오래 되었다.

나무라고 할 것도 없는 넝쿨뿐인 이 줄기에서 해마다 이맘때면 제법 탐스러운 꽃을 피워낸다. 장미꽃을 말 할 때 제법이라는 표현은 장미에 대한 예의가 아닐는지 몰라도 달리 표현하기가 싫은 이유는 꽃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장미라 하면 돈 호세를 유혹하던 카르멘의 입술에 물려있는 새빨간 정열의 색깔은 아니더라도 슬프도록 소박한 흰색으로 피어났다 해도 매력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황색장미나 하다못해 분홍색이나 검붉은 색깔의 흑장미로 피어나 독특한 멋이라도 풍겨주면 좋으련만 이 꽃의 색깔은 무어라 표현조차 못 할 만큼 개성이 없어 보였다. 황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니고 어쩌면 분홍색을 띄운 엷은 노란색과도 거리가 먼 야릇한 빛이라 그 자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이 꽃을 볼 때마다 개성이 없다면서 홀대하며 지냈다.

 

게다가 줄기는 예리한 가시투성이라 맘대로 손쓰기조차 힘들다. 바람 부는 날엔 마른 잎을 떨어트려 골목길은 계절 모르는 낙엽으로 불결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나는 가끔 이 집의 주인을 만날 때면 이 장미에 대한 폄하 발언을 한 적 있으며 가지치기라도 하면 훨씬 보기에 편할 것이라는 내 생각을 조심스럽게 전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더벅머리처럼 마음대로 자라난 장미 넝쿨을 가지런하게 다듬어 주는 주인의 모습을 보고 내 마음 속에 한 부분도 이렇듯 정돈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더위를 느낄 만큼 일기는 빠르게 변한다. 오늘 아침 무심코 그 벽을 또 바라보는데 세월의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함박 같은 장미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지난겨울의 그 한파를 무사하게 견뎌내고 봄을 맞아 역시 개성 없는 색깔의 장미꽃을 피워낸 것이다. 오늘아침 만개 된 것인지 갓 피어난 꽃들은 싱싱하고 탐스럽기는 하다.

 

추운 계절을 보내고도 다시금 피어난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 탐스러움에 호기심을 가지고 담벼락 전면에서만 보던 장미를 각도를 바꾸어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이건 뭐람? 보기에 괜찮네....”

시멘트벽을 배경으로 내가 앉은 자리에서만 바라보던 모습과는 다른 꽃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제법 장미다운 품위를 가지고 잎사귀들과 줄기와 시멘트벽 사이에서 미풍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청초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늘 보아오던 그 줄기에서 피어난 호감가지 않던 그 장미 넝쿨과 꽃의 색깔은 그대로다. 그러나 그 줄기에서 피어난 개성 없는 색깔의 꽃인데도 오늘 아침의 장미는 지금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 선입견을 버리자. 무엇을 보던 누구를 만나던 고정 관념을 버리고 각도를 달리해서 관찰하는 습관을 갖기로 하자. 오로지 꽃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을 뿐인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장미꽃의 아름다운 실체를 발견하게 되다니...

 

오늘아침은 장미꽃송이에서 내 심성의 오류였던 내 안의 편견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삶의 지혜를 발견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