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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일지

홍콩을 떠나며

홍콩을 떠나며 (Out of The Hong Kong)

 

이른 시간에 일어나 등교하는 손자 아이들을 가볍게 안아주며 인사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는 이미 홍콩을 떠난 뒤 일 거야 잘들 있거라.” 큰 놈은 벌써 눈물이 가득하다. “여름방학 때 한국에서 만나자” 라며 다독여 보냈지만 움직일 때마다 많은 경비가 발생하는 고로 그 말 역시 조심스럽다. 인생을 지나보니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것과 젊은 시절에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전 9시 반 못되어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12시 30분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최소 두 시간 전에는 출국 수속을 해야 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홍콩 란타우섬, 통청(東通)지역 고층 아파트 Coastal sky line이다. 방 셋 화장실 둘 네 식구가 살기에는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이다. 우리는 둘째손자 녀석이 쓰는 방을 차지하고 2층 침대에서 편안하게 여러 날을 보냈다. 2주일 동안 딸네 부부에게 부담을 주거나 불편함을 끼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고속 승강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오면 행인들이 걸어 다니는 보도다. 이 길은 본 건물의 2층에 해당하는데 지붕이 있어 비가 내려도 젖지 않고 걸을 수가 있다. P존이라고 부르는 이 길에는 떨어진 휴지조각이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또한 노면(路面)에 해당하는 G존 에서 2층격인 P존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이 있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어 노년들이나 교통약자들에게 편리하도록 되어있다.

현관 바깥부분은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았고 군데군데 넓은 수조를 만들어 인테리어 효과를 내었는데 깨끗한 물이 항상 찰랑 거리고 있다. 바람이 불때마다 잔물결이 일렁이는 모습은 고급 호텔 로비와도 같은 우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홍콩이라는 도시, 딸과 사위는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간다. 되도록 아껴 가며 두 녀석 외국인 학교에 보내 서양식 교육을 받게 하면서도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부모인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아 정확한 실상을 알 수는 없다.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어떤 이는 “홍콩이라는 도시에 뿌리 내리는 것만으로도 경제력이 좋다고 볼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고소득자가 아니라면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위는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종일 업무에 힘쓰다가 저녁이 되면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한다. 집에서는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가사를 돌보며 인터넷 회의로 업무처리도 하면서 성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처럼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자리 약속도 없이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직장생활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한다. 그런데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업무 후의 시간은 가정에서 보내며 가족위주의 생활을 즐기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10년 이상 그곳에 거주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나름대로의 느낌일 것이다.

딸과 이웃으로 지내는 지인들의 면면을 보면 어느 나라에 살던지 고급인력일 수밖에 없는 지식인 들이 대부분이다. 서울에서 일류대학을 졸업했고 현지에서도 좋은 직장에서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퇴근 문화에 젖거나 가정에 성실하지 않은 이를 찾기 어렵더라고 말한다. 

그와 같은 생활방식은 홍콩 주민들의 시민의식 가운데 뿌리내린 중심정서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딸네 가정이 그곳으로 이주해 살아온 세월이 10년 이상 되었어도 행인들 중 술 취한자의 추한 모습을 목격한 예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란다. 번화한 환락가를 제외한다면 인근의 영업식당 역시 음주만을 즐기는 곳은 찾지 못했다.

 사위역시 퇴근 후에 동료들과 밤 시간을 즐기다가 늦은 귀가로 기족들을 기다리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니 그 역시 이곳 주민들의 정서적 생활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깨끗한 주변 환경과 질서 있는 생활습관 등 이와 같은 문화는 백년이 넘는 세월 영국통치에서 받은 선진문화의 영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1국 2체제를 보장하겠다던 중국정부는 약속을 저버리고 범죄자 인도 등 중국 법령에 따르라 했다. 이러한 본국 정부의 법적 행정적 조치에 반발 하여 50만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시민들의 요구와 의지를 끝까지 관철 시켰거나 법안을 철회 하도록 만든 것은 시민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충분한 자격이 아닌가. 나는 비록 며칠간의 이곳 체험을 통해 극히 부분적으로 보고 느끼고 들은 것뿐이니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지키며 누리고 사는 겉모습만을 보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바로 그들의 속 모습 이자 그들의 정신 아닐까 싶었다.

 홍콩을 떠나는 비행기는 대한항공 K172 현지시각 12시30분 출발이다. 출발 반시간 전부터 탑승이 시작되고 정확한 시간에 기체는 서서히 활주로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자리는 58A번이다. 비록 이코노믹 꼬리부분의 다소 옹색한 좌석이나 낮 시간 창밖으로 보이는 경관은 즐길 만 했다. 기체가 이륙하기 전 내가 묵었고 아이들이 살고 있는 海岸 스카이라인 아파트가 멀리 보인다. 속도가 붙은 비행기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동통지역 거리와 건물들을 바라보는 감회가 평온할 수가 없다. 고물가 사회에서 두 아이들 교육시키며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딸네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잠시 기도한다. “저들에게 신실한 믿음가운데 경제적인 안정과 건강 주시어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기체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는데 그동안 주고받은 자녀 손들과의 정이 벌써 그리워진다.  끝.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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