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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수필

[수필] 사돈의 눈물 (1,2차 퇴고 완료)

  사돈 내외가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분들은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라 국내외 유명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여러 번 완주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전거 여행으로 세계의 곳곳을 섭렵하며 사는 즐거운 인생들이다. 근래는 한국의 백대 명산을 순회 등산 중이라 우리가 사는 고장 인근 천마산 등산을 마치고 귀가 중에 전화를 했다는데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있다. 그와 같은 내용을 알게 된 우리도 아쉬운 마음이 여간 아니었다.  

 완연한 봄이다. 근처의 맛 집에서 갈비탕으로 식사를 마치고 인근의 수동 계곡으로 향했다. 햇살 밝은 계곡의 신선한 경치와 봄바람을 쏘이는 기분은 사돈내외를 대하는 조심성을 잊게 할 만큼 상쾌하다.

 인적이 뜸한 숲길에 허름한 듯 고풍이 느껴지는 찻집에 들렀다. 우리 넷 외에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이런 저런 환담의 시간을 즐겼는데 손자들의 성장에 관한 화제가 주로 이어졌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첫째 손자인 윤우에 대한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했지만 아이에 대한 나의 믿음은 긍정적이다. 친가 측인 그들의 인간미 깊은 성정과 훈훈한 가풍을 알고 있는 데다가 성장기에 한 번도 부모의 마음에 걱정을 주지 않던 내 딸의 심성을 본받았다면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는 내 의견을 말했다.

 윤우는 어렸을 때 우리와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초로의 인생을 살아가던 그 무렵 우리는 뜻하지 않은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아내에게는 쉽지 않은 육아의 과정이었겠지만 탈 없이 성장하는 모습과 하루가 다르게 지능이 발달하던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은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런데 두 세 살 무렵 윤우는 감성을 자극받는 경우에 자주 울었다. 달 밝은 가을밤 하늘을 보면서 엄마를 찾으며 울었고 할머니가 자장가 삼아 불러주던 섬집아기』 라는 동요를 들으면서도 눈물을 지었다.

 윤우의 여린 감성이 혹 외조부인 나를 닮은 것이 아닐까. 나도 조금만 감동스러운 일을 대하면 눈물이 난다. 어떤 때는  TV 아침 방송을 시청하다가도 눈시울을 적실 때가 있다. 그러나 아내에게 조차 민망한 마음이 들어 내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 개인의 내면세계 이므로  펼쳐 보이는게 부끄럽다. 우리가 지나온 시대는 여린 감성으로도 성실이라는 키워드 하나만 가지고도 용케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더욱 치열해질 미래의 세계에서 눈물 많은 인성으로도 희망하는 것을 이루며 무난히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된다.

  햇살은 밝고 온화하다. 길가 나무들은 연두 빛 잎을 피어내고 양지바른 산언덕에 분홍빛 진달래가 봄바람에 나부낀다. 지금은 만개했으나 이내 져 버릴 목련꽃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계곡을 뒤로했다.. 가까운 친구 부부와의 사이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는 일상적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향 좋은 녹차에 물을 부으면서 오후의 시간을 가졌다.

  사돈은 충남 서천이 고향이다. 선친께서는 지역 유력자로서 양조업을 운영했던 관계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한 윤택한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형성된 인성답게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것에 조금도 꾸밈이나 가식이 없다. 순한 햇살이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백봉산 봉우리에 푸르스름한 이내를 이룬다. 고향집 언덕에 피어나던 무성한 백목련 이야기며 유년 시절 행복했던 기억을 말하며 사돈은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때 그의 핸드폰 톡 기능의 신호음이 우리들 틈으로 들어왔다.

  사돈이 나를 보며 수필작가의 감성으로 이 글 한번 읽어 주시죠.” 하면서 스마트폰을 내게 펼쳐 보인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혼자 느끼기 아까운 감동을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것 같다. 내용은 80대 중반의 연세를 살고 계시는 연로하신 누님이 막내 동생인 사돈에게 보낸 톡인데 고목이 다되었음직한 목련나무에 하얀색 꽃이 활짝 핀 사진이 먼저 눈에 보인다. 누님은 오늘 고향집에 다니러 갔다가 즉석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여려 형제들에게 보낸 것이다.

  제목은 목련꽃을 회상함』이다.이다. 우리 양조장 언덕 위, 흐드러지게 만발한 목련 한그루 다들 기억하지? 봄이면 소곡주 향기와 함께 꽃 잔치 벌이신 아버지. 고추 상추 언덕 빼기 채전 밭 드나들던 우리 어머니. 중략... 한여름 모깃불 연기 속에 평상에 모여 수박 먹으며 별을 헤던 그 시절. 웃음소리 끊이지 않던 그곳 너는(목련나무) 알리라. 여기까지 읽는데 콧날이 시큰 목이 멘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피난지에서 돌아온 우리 가족들에게는 당장 먹고살아야 할 일이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아무곳에도 수입 거리는 없고 수입 거리를 구하고자 하는 이들은 거리에 차고 넘치던 그 가난하던 시절, 내 부모님이 자식들의 호구를 위해서 애쓰시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시절 우리의 엄마 아버지들은 어찌 견디어 냈을까. 회상속 인데도 어머니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이는 것 같다.

 봄마다 꽃 잔치 벌여주셨다는 자상하신 아버지.  채소밭 오르내리시며 자식들을 위한 사랑의 먹거리를 준비하셨을 어머니, 상상하니 사돈의 추억속에 나도 있는 것 같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이제는 유명을 달리한 몇몇 형제들과 흘러간 세월과 세월 속에 묻혀버린 수많은 추억들이 되살아나 사돈의 마음속으로 찾아왔을 것이다.

  목이 메어 이어 읽지 못하는데 사돈은 솟구치는 그리움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함께 듣고 있던 안사돈 역시 눈시울을 적시며 남편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리며 위로한다. 뜻밖의 일이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보며 우리는 놀라기 보다는 사돈의 추억속에 함께 젖어들고 말았다. 사돈은 막내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충분하게 받으며 성장 했다니 그 행복한 기억이 얼마나 많으랴. 목련나무 아래 봄 꽃 속에서 웃음소리 끊이지 않던 장면은 상상만 해도 돌아가고 싶은 성장기의 추억이 아닌가.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치유의 물이다.’ 라며 영국의 헨리 모슬리 라는 정신과 전문의가 정의했다. 또한 눈물을 흘리면 뇌와 근육에 산소공급이 증가되고 혈압이 일시적으로 낮아져 심장병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눈물 많은 윤우의 여린 감성은 친할아버지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것이 확실하다. 소중하게 키운 외손자가 나의 인자를 닮지 않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스스로 나를 다독였다.  .

 

                                                       2021. 4.

                                                                               수필문학 5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