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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동산에서 온 편지

가을이 익어갑니다


 가을이 익어 갑니다...

노곤해진 초록이 단풍들 채비를 하는 산골에서 문안드립니다.


소슬바람이 살짝 만 불어도 밤나무 밑으로 달려가는 정숙이, 기명이, 재경이...

덜 익은 대추를 한주먹 따서 먹는 영아에게 배 아프다며 잔소리하는 수연 할머니...


들꽃 꺾어 유리병에 담을 줄 아는 선영이의 감성이 빛이 나고...

심심한 오후 평상에 둘러 앉아 찐 밤을 까먹는 모습이 그냥 가을입니다.


돌 지난 아기의 지능을 갖고 있는 스물 세 살의 지현이가 부쩍 말을 잘합니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무슨 말이든 따라 하지요.

그 모습이 귀여운데 요즘은 마트 가요?”를 즐겨 합니다.


먹고 싶고... 어딘가 가고 싶을 때마다 마트가 생각나나 봅니다.

자기 의지가 생기고 뭔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추석 명절.. 돌아 갈 집이 있는 식구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동안 돌아가신 22분의 추도 예배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하고 모두 모였습니다.

우리 식구들이 할 수 있는 게임을 했지요.

신발 멀리 던지기, 아주 쉬운 문제 알아맞히기, 나름대로 개인기도 하고...

그리고 식구들이 젤 좋아하는 보물찾기도 했습니다.


잘 보이라고 진한 핑크빛 종이를 접어 건성으로 50개를 숨겼지요.

3개 찾은 혜연이가 1개도 못 찾고 서성대는 동란 할머니에게 나눠 줍니다.

왔다갔다만 하는 원미연에게 매자가 나눠주고, 보물찾기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서 있는 영희에게도 윤희가 나눠줍니다.

찾은 종이 개수대로 과자와 젤리, 쵸콜렛 등을 늘어놓고 맘대로 고르게 했지요.

쓸쓸함이 신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88세의 분녀 할머님이 날로 쇠약해지고 계십니다.

그래도 여전히 성경을 읽으시며 정신 바짝 차리려고 애쓰시지요.

마음은 아닌데, 몸은 맘대로 안 되고... 소 대변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안 되서 참 힘들었지요.


지팡이를 짚고 기저귀를 찬다는 것은 결국 마음을 내려놓아야 되는 일상이네요.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의 끝자락... 누구든 맞이해야 하는 그 시간...

애처롭고 간절한 할머니의 기도가 자꾸 마음이 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나절도 살 수 없는 인생임을 절감하며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를 돕는 손길과 그 사랑...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2016925일 나눔의 동산에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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