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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새의 속삭임

어떤 소식 (윤우네 이야기)

 

오랫동안 기다리던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이라 생각하니 기쁘고 감사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實像』이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바울사도의 말씀인데 하나님을 믿으면 받게 되는 특혜 중 하나다.

 

윤우 엄마는 1976년생이니까 올해 38세이며 우리가정의 장녀다. 여섯 해 전 4월에 결혼을 했고 이듬해 3월에 첫 아이를 낳았으니까 신혼지에서 윤우를 잉태하게 된 매우 정숙하고 순결하고 건강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 확실한 아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평균 네 가정 중에 한 가정은 순조롭지 않은 임신문제로 고민 한다는데 신혼여행에서 『胎의 열매』를 거두었으니 자신들이 받은 축복은 물론 양쪽 부모에게도 크게 효도를 한 셈이다.

 

윤우가 태어나고 출산 휴가가 끝나는 3개월 뒤부터 아기가 제 부모 품에서 자라나지 못 했다는 것은 내 주변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다. 그 때는 윤우 외할머니인 아내도 직장에 매어 있었기 때문에 애처로운 일이나 어쩔 수가 없었다.

 

영등포 지나 서울 맨 끝 지역에 사는 어미 친구 집에다가 한 달 동안을 맡기기도 했고 너무 어려서 쉽게 받아주지 않는 마을 유아원으로 보내기도 했다. 새벽잠에서 채 깨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들쳐 업고 유아원에 데려다 주는 건 다반사고 유아원 근무가 끝나는 저녁 시간까지 어미가 퇴근하지 못 할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구해서 윤우를 데리고 있게 하는 등 번거로운 건 말고라도 어린 아이의 정서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던 어른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으며 눈물은 얼마나 흘렸는지. 밤톨만한 아이들끼리 어린이 집에서 생활할 때 한 아이로부터 감염된 감기 증세로 고열에 시달린 적은 몇 번 이며 그로 인해서 한밤중 응급실로 달려간 적은 무려 몇 번이던가. 괴로워 보채는 어린것을 유아원으로 보내고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마의 비통한 심정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비단 윤우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는 모든 젊은 엄마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이다. 요즘 신생아의 출산이 자꾸만 줄어들고 인구가 급속하게 감소하는 이유는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가 되어있는지는 오래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문제에 대한 대통령 당선자의 복지공약은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많은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또한 육아로 인해서는 어떠한 불이익도 당하지 않도록 규정으로 보장되어있다 하나 대다수의 직장은 워킹맘에 대한 은근한 차별은 표면화 되지 않았을 뿐이다. 『* * * 씨는 둘째아이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라며 둘째아이 잉태를 미리 막으려는 직장 상사의 노골적인 압력이 아니라 해도 그토록 힘든 육아를 다시금 시도하려는 젊은 엄마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틈틈이 딸아이를 향해 윤우에게 동생을 낳아 줄 것을 대놓고 권한 적이 몇 번 있다. 윤우하나로는 아이한테도 엄마한테도 외로울 것이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그럴 때 마다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 어려운 육아과정을 다시 반복하기란 쉽지 않은 모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다행인 것은 딸아이와 사위의 비교적 적지 않은 연봉과 성실하고도 근검한 절약정신으로 먹고사는 문제나 아이 양육에 대한 경제적인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딸아이의 가임연령도 높아가고 자기들의 인생을 둘이서 설계한 뒤의 합의된 계획일 터이니 아무리 부모 된 입장이라도 더 이상 관여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간섭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요 몇 개월간은 아무런 주문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삶에 대하여 관대하게 일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뭔 말을 하려고 이토록 서론이 길까.』 하며 의문을 제시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이 정도만 읽고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모를 센스로 알아차린 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 윤우는 제법 자랐다. 그러나 보호의 손길이 필요치 않을 만큼 성장 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부모나 어른의 도움이 있어야 밥도 먹고 옷도 입을 수 있고 유치원 가는 버스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형편과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온 가족이 외국으로 이사를 했고 윤우 엄마는 그 나라에서 전업주부로만 살아가게 되었다. 생후 90일 부터 다른 사람들의 도움에 의해서 보호를 받던 윤우가 요즘은 온전히 엄마 아빠 품에서 최고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윤우네가 홍콩으로 이사를 간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 동안에 내 아내는 딸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하면서 두 번이나 홍콩을 다녀왔다. 처음 방문 때에는 그 나라의 여러 곳을 다니며 관광도 즐기고 이름 있는 여러 곳을 돌며 진귀한 먹 거리도 즐기면서 소일 했다. 그러다가 윤우가 공교육을 받기위해서 그 나라의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침이면 유치원 버스 타는 곳 까지 아이를 데려다 주기도 하고 오후 세시반이 되면 버스 내리는 곳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했다. 여기에 살 때나 별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그래도 한창 그 나라의 풍습을 익혀가면서 외국인 학교에서 조금씩 영어활용이 일상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어른의 마음은 대견스럽기만 하다. 아내는 윤우와 함께 그곳에서 생활 하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지만 때때로 집에 있는 늙은 할아범의 홀아비 생활에 마음이 쓰이기도 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문은 예정도 계획도 없이 이루어졌다. 홍콩에서 돌아온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에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윤우 아빠가 외국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와 단 둘이서만 낯선 곳에서 생활하기가 무섭다면서 제 어미더러 홍콩으로 올 수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말이 묻는 형식이지만 아이는 이미 비행기 표 까지 예약을 해 놓고 제 어미한테 통보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거부할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올해는 김장도 유난히 일찍 끝낸 뒤여서 집안 일로 방해 받을 만한 일은 없었다. 할아범은 혼자 살아가는데 이력이 붙기도 했지만 오히려 혼자서 지내는 것에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첫 번째 방문 때에 비해서 일찍 돌아왔다. 윤우 아범의 출장 기간이 끝나기도 했지만 抵價 항공으로 예약을 했던 관계로 왕복 티케팅 날자가 1개월 이상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위는 장기 출장을 끝내고 이내 일주일간의 특별 휴가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마침 윤우마저도 유치원에서 일주일 간 방학을 맞게 되어 딸네 가족은 이웃 나라인 태국 방콕으로 관광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제 어미와 함께 가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하는 그들은 홍콩보다 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고 아내는 동중국해를 거슬러 집으로 돌아왔다. 해외에 나가는 일이 하늘에 별 따기만큼 이나 어려웠던 우리청년 시절에 비해 요즘의 젊은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대부분의 외국을 입국 사증마저도 없이 왕래 할 수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급스러워 진 삶의 질 인가. 해외 어느 곳 이든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젊은 세대가 나는 정말로 부럽기만 하다.

 

온갖 살림을 맡아하던 한 가정의 안주인이 자리를 비운지 한 달 만에 돌아왔어도 집안은 한결같이 깨끗했고 가재도구는 물론 거실 바닥의 카펫에 이르기 까지 먼지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은 천성적으로 혼란스러운 것을 혐오하는 나의 결벽증 때문이었다. 돌아온 아내는 그곳에서 저렴한 값으로 사 왔다는 참깨, 시금자, 낙화생, 검은콩 등을 비롯한 올망졸망 농산물을 대견스러워하면서 며칠을 보내자 여행으로 인한 가벼운 흥분도, 고단함도 다 회복되어 여기서의 일상에 빠지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태국 여행에서 돌아온 윤우 어미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입맛을 잃어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데다가 조금만 먹으면 토해서 기력을 차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위에 땀을 많이 흘린 때문일 것이라며 며칠 안정을 취하라고 일렀지만 아내의 걱정은 잦아들지 않는다. 딸아이는 윤우가 감기라도 걸려 고생을 하게 되면 늦은 밤에라도 병원 응급실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내 아내역시 딸이 아프다 하니 자신이 아픈 것 보다, 그리고 늙은 남편이 아프다는 것 보다 더 걱정을 하는 것은 여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진한 모성애 때문일까.

 

그러한 딸아이가 오늘아침 제 어미한테로 한 가지 소식을 또 보내왔다. 장거리 전화로 알려온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결국 이토록 長文의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엄마, 어제 병원에 갔었는데 나 임신 6주라네....』 이 한마디의 중요성을 얼른 알아채지 못한 채 나는 잠깐 생각을 했다. 그 동안 여러 번 딸아이한테 명령으로, 잔소리로, 애원으로, 충고의 말로 주문했던 간절한 내 소망이 이루어 진 것이다. 윤우 하나로 족하다면서 둘째아이 갖기를 그토록 거부하던 딸아이가 드디어 윤우 동생을 보게 된 것이 나는 무엇보다 흐뭇하다. 그들만의 계획에 어떤 수정을 가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피임의 실패로 인한 결과인지는 알 필요도 없다.

 

어떤 재산상 큰 이익을 얻어 엄청난 부를 이룩한 것 이상으로 나는 만족스럽다. 이 사실을 나를 아는 모든이 들에게 얼른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토록 길고도 장황한 내용의 글을 써서 알려드리는 바이다.

여러분, 축하 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요? 하 하 하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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