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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서정자 전도사 소천 25주년 추모예배

서정자 전도사 소천 25주기 추모예배 순서

  신앙고백 : 전능하사

찬 송 가 : 369235. 242.

기 도 :

성 경 : 고린도후서 9 : 8 ~ 12

제 목 : 나누며 사는 인생

폐 회 : 주기도문

 

인간은 대개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경쟁사회를 살다 보면 탐욕적인 성격으로 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은 점점 더 냉랭하고 야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이웃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봅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며 도우면서 살아갈 때 피차 사랑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나누면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나눠주는 것을 즐긴 것 같습니다.

99절에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작년 겨울이었는데 어느 날 대형 약국 앞에서 포장용 폐박스를 정리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노년에 이르렀을 이분은 박스를 정리해서는 손수레에 싣기를 반복하느라 주변의 시선에는 무관심 합니다이때에 바쁘게 길을 가던 한 남자어른이 주춤 하면서 그 여인에게로 다가갑니다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그 여인에게 줍니다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이 여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니까 남자 어른은 말합니다.

얼마 안 되지만 아침 식사라도 하세요.” 그제 서야 사태를 파악한 여인은 돌아서면서 아니라며 괜찮다며 극구 사양합니다.

 여인은 결국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받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노년에 접어들었을 이 남자는 이른 시간에 수고하는 여인을 보면서 아침식사도 걸렀겠다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남을 돕는다는 행위는 습관이 되어 익숙해지지 않고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연말이면 추운 길가에서 자선냄비를 놓고 모금활동 하는 구세군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냄비 안에 돈을 넣는 모습은 별로 눈에 뜨이지가 않습니다.

안쓰럽고 딱 해서 겨울날씨가 더 춥게 느껴집니다.

  어떤 글에서 보니까 사람들이 인색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고 돈을 넣는 과정이 쑥스럽고 부끄러워 그냥 모른 척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습관이 되지 않아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나 역시 부끄러워 그냥 지나쳤는데 작년 겨울 가장 추운 날 우리 동네 이마트 앞에서 어색함을 무릅쓰고 돈을 넣은 적이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만 원 짜리 한 장을 넣고 나니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경험 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많은 액수가 아니더라도 돈을 넣어도 부끄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날 아침, 모르는 여인에게 식사대로 드리는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나는 그와 같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수수한 옷차림과 철지난 운동화를 신은 것으로 보아 크게 부유한 인생처럼 보이지 않는 그 남자의 행동이 차가운 초겨울 아침에 마음을 따듯하게 해 줍니다.

   사랑은 받을 때 보다 줄때에 더 행복하다고 하지요재물은 쌓아 둘 때 보다 조건 없이 남에게 베풀고 나눌 때에 더 행복해 집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은 내 것에서 하나를 빼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를 더 보태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 하지만 현명한 자들은 나눔과 기부를 통해서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가 행복해 지는 선행을 선택한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까치밥이라는 습관은 세계에서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귀한 나눔의 풍습입니다

겨울날 앙상한 감나무 맨 꼭대기에 빨갛게 익은 홍시 서 너 알이 매달려있는 것이 보기에 좋습니다.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가 한국을 방문했던 1960년 겨울에 농촌을 여행하다가 나뭇가지 위에 달려 있는 빨간 홍시 몇 알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펄벅 여사는 안내인에게 묻습니다. “저 감은 너무 높아서 딸 수가 없었군요.”

안내원이 대답합니다. “그게 아니라 겨울에 먹이가 모자라는 까치나 작은 새들의 먹잇감으로 남겨둔 것이랍니다.”  

이 말을 들은 펄벅여사는 작은 미물에게도 나눔을 실천하는 우리의 정서에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명승지나 궁궐을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고 저런 풍경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이라며 만족 했다는 그녀의 여행담이 우리를 따듯하게 합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은 새롭지도 않고 깨달음을 주지도 못하는 일상용어로 전락한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빈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죽는다는 말이맞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베푸는 일에 인색한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원초적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생전에 그토록 따르던 많은 인맥들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이 소중한 자녀 가족 친척 친구들그러나 죽음의 세계에 까지 동행 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그런데 오직 하나남에게 나누고 베풀어준 선행이라면 죽음 저편에 까지 동행해서 그 이름을 후대에 까지 빛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고린도 후서 98절 이하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교우들을 돕는데 열성인 점을 칭찬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지 말라하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우리가 먹고 마시기에 부족하게 만드셨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일용할 양식은 넉넉하게 먹고 쓸 수 있을 만큼 주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하게 주신 재물을 가지고 풍요롭게 사는 이들도 있고 가난하게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능력 있고 건강한 사람들만 잘 먹고 잘 살도록 만들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어서 밝은 세상을 열어 가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을 줄 압니다.

  이스라엘에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두 군데 있지요. 하나는 갈릴리와 또 한곳은 사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북부 헐몬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갈릴리 바다에서 받아드려 온 이스라엘 국토를 비옥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이 맑고 깨끗해서 물고기도 많습니다.

  그 물은 다시 하류로 흘려보내 사해에 이르게 되는데 사해는 물을 받아드리기는 해도 지형적인 특성상 밖으로 흘려보내지는 않습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해의 바닷물은 소금기가 넘쳐 물고기 한 마리도 살 수가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누는 곳에 생명이 있지만 움켜쥐기만 하고 남에게 베풀지 않는 곳에는 생명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길은 만남과 나눔의 연속이지요.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때에 따라서 음식을 나누고 좀 더 가까워지면 인정과 사랑을 나누고 선물을 나누며 슬픔과 기쁨을 나눌 때 우정은 더욱 깊어집니다.

  서로가 나눈다는 것은 긍정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나누면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많아 집니다.

그것이 나눔의 역설적인 신비입니다.

 나눔은 소유의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에 있습니다.

나눔은 희생으로 시작되지만 풍성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나눌 때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어떤 성공한 기업인이 자서전에 쓴 글을 읽고 감명 받은 내용이 있어

함께 읽고 마치려 합니다.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뒤에 나는 농사꾼으로 남아있기를 바라시는 아버지께 편지 한 장 써 놓고 집을 나왔습니다. 서울에 가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하겠다는 내용의 글이었지요.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무일푼으로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다가 힘들어 지처 쓰러지기 직전에 골목 안에서 어떤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작고 초라한 인쇄소 앞에서 만난 김씨 아저씨는 나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인쇄소에서 일하거라. 나중에 돈이 모이면 야간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주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찬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자면서 아저씨의 인쇄소에서 일 했습니다. 한 달이지나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라면 한 상자를 사다놓고 나머지는 몽땅 저금했습니다. 신이 나서 일하는 동안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저녁. 사놓은 라면이 다 떨어진 것 같아 상자에 손을 넣어보니 라면이 두 개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한 개를 꺼냈는데 다음날 신기하게도 라면 두 개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분명이 어제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또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여전히 라면은 두 개였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라면 한 상자를 한 달이 넘게 먹은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하루 종일 라면상자가 있는 쪽에서 일했습니다.

  퇴근 무렵 김씨 아저씨가 나를 불러 잠깐 가게에 갔다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인쇄소 밖에 나와서 유리창 너머로 라면상자를 슬쩍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슬금슬금 눈치를 보시던 아저씨가 라면상자 쪽으로 걸어가더니 품속에서 라면 한 개를 꺼내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걸어 나오셨습니다. 어린 4남매와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시다는 아저씨.... 나는 그날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한없이 울었습니다.

 히브리서 13: 16은 이렇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맞습니다. 이곳 스탶진 여러분들이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힘든 일을 감당하는 것은 마음을 나누고 사랑으로 베푸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베푸는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서로 나누어주고 나누어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또 이와 같은 하나님 사업에 동참하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인줄 압니다.

  우리들의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분명한 뜻을 알고 혹 어렵고도 힘든 상황이 닥친다 하더라도 기도하면서 순종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전도사님이 소천하신지 25년 되는 날인데 변함없는 우정과 사랑으로 함께 예배드리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간다고 하지만 이만큼 살아보니까 물보다 더 빠른 바람처럼 날아갑니다. 전도사님 누워 있는 동산까지 힘들게 올라가면서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라고 하시던 사랑하는 할아버지 형부권사님께서도 돌아가신지 벌써 2년이 흘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곁에 정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한 시절 함께 살다가 본향으로 모두가 돌아갑니다. 남은 인생도 하나님께서 건강 주시는 대로 살다가 세상 떠나 하나님 나라 가는 날 까지 나누고 베풀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우리의 여생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여기 나눔의 동산을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신 터전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아가게 하시는 것 하나님의 사랑으로 믿고 감사드립니다. 우리 서로 나누고 베푸는 가운데 여기까지 인도해 주시어 세상에서의 천국을 체험하며 평안하게 지켜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들을 지금까지 지켜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하시어 밝고도 옳은 길을 따라 승리할 수 있도록 지혜와 믿음 주옵소서.

  혹 원치 않는 역사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으로 믿고 더욱 충성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바라고 원하는 각자의 모든 기도 제목도 이루어 주시되 육신의 정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들어내는 신실한 기도로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께 충성하다가 주님 부르심 받은 전도사님의 영혼을 외롭게 두지 마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부활잔치에 우리 모두 참여하게 하실 줄 믿으며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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