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채비
그 곱던 단풍 다 벗어버리고 겨울채비를 하는 나무들의 의연함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산골에서 문안드립니다. 집 안팎을 돌며 얼 곳과 덮어야 할 곳을 찾아 손질하고, 늘어놓고 살던 자전거며 여름 물건들을 정리하고... 시래기 엮어 매달았습니다.
김장김치도 지금부터 먹을 것과 내년 여름 이후에 먹을 것을 구분해서 저장하고는 겨울나기 준비 끝을 외치니 맘이 후련합니다.
그냥... 정말 그냥... 감사할 뿐입니다.
지적장애 2급인 재경이는 요즘 쓸쓸합니다.
괜히 소리 지르고 싶고, 응석 부리고 싶고, 저 좀 알아달라고 괜한 행동도 하지요.
소희가 자기하고만 친하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재경이의 맘과 그러기 싫다는 소희의 맘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멀어지고 있네요.
재경이는 지붕만 바라보며 괜히 소리 지르는 것으로 맘을 푸나봅니다.
4살의 예린이는 몸도 마음도 크느라 바쁘기만 합니다.
지적장애 언니들을 어른으로 생각했는데, 함께 살다보니 자기가 더 똑똑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말았지요.
아는 척에, 잘난 척에... 어른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눈에 보입니다.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해 주고 벌을 주기 위해서 초콜릿과 사탕 금지령을 받았습니다.
간식을 못 먹으니 오늘 아침 밥을 돌쇠처럼 먹네요.
잘 크고 있습니다.
41세의 은경씨는 오줌만 싸면 먼저 큰 소리 칩니다.
그 소리가 쩡쩡 울리지요. 오줌 쌌어!! 오줌 쌌어!! 오줌 쌌어!! 몰러.. 몰러..
코끼리만한 덩치가 떠들며 수선을 피우면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오줌을 싸도 너 때문이고.. 넘어져도 너 때문이고.. 다 너 때문이지요.
이런 툴툴이가 요즘은 혼자 옷 입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입혀주면 1-2분이면 끝나지만 혼자 입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30분 걸립니다.
은경이의 봄날이 기대됩니다...
별명이 둘리인 은숙씨는 아침마다 치장하느라 시간이 모자랍니다.
꼭 아침밥시간에 꼴찌로 오는데, 혜경이는 그런 둘리를 기다려줍니다.
둘리 놓고 그냥 먼저 오라고 얘기해도 소용이 없지요.
사고력이 부족한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도... 정상인을 부끄럽게 만드네요.
천사 같은 식구들과 살 수 있다는 것.. 기막힌 은혜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도록 돕는 사랑과 손길을 위해 기도할 뿐이지요.
고맙습니다.....
2015년 11월 24일 나눔의 동산에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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